모두가 성장하지만 당연히 직선은 아니다. 어른의 성장은 때로 굴절되고 제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것일 때도 많다.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고,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비밀을 누군가 나눠갖게 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두살 어린 나이에 맞이한 엄마의 죽음과 빈 자리 속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콘래드, 부재하는 엄마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이해의 지평을 넓히며 살아왔지만 관계의 안정감에 대한 불신이 마음 깊이 자리잡은 조나,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열정적인 활동을 통해 사회적으로도 명망을 얻은 종군사진작가 엄마와 젊은 날 잠시 펼쳤던 연기의 꿈을 접고 교사로 살아가는 아빠다. 가족들을 감싸는 기운은 안온하지만 사선을 넘나들며 전장의 절규를 기록하는 엄마의 귀가는 집에서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가족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물감과 가족 밖에서 찾았던 위로라는 경계에 다름 아니다.
부모, 부부, 부자, 형제, 연인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향연과 결코 '시끄럽지' 않은 파괴의 응시가 매력적인, 숨겨뒀던 증거를 꺼내듯 플래시백되는 장면과 사건들 속에서 피어나는 세상에 포진한 수많은 마음들을 소란스럽지 않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 담담함이 무서우리만큼 모든 엇갈림이 웅변하는 것은 결국 누구든 갈구하는 공감과 소통, 그러나 결코 닿을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불가능성처럼 느껴졌다.
좀은 급작스런 화해의 제스추어처럼, 노인의 외양을 한 '형의 아기'와 함께 돌아온 엄마와 이를 따뜻하게 맞이한 가족들의 우화같은 마지막 에피소드 그리고 에이미와 아가가 있는 집으로 향하는 세 부자의 라스트신은, 백분간 영화가 펼쳐보여준 세계를 조금은 부정하는 듯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려나 오랜만에 만난 담백하고 정제된 이야기, 극장을 나서며 자비에 돌란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