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16. 7. 28. 23:11



직썰의 가부장적 세계관 운운하는 기사를 보고서 살짝 갈등했는데 역시 직접 보길 잘 했다. <사이비>는 꼽아두다 놓쳤지만 <돼지의 왕>과 <사랑은 단백질>로 기억하고 있는 연상호에 대한 기대와 이미지에 부합함은 물론 엄청나게 많은 생각거리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직썰의 비판은 현미경과 망원경을 차례로 갖다 댄 듯 미시적인 부분에 대한 엄청난 확대해석이었다는 느낌, 물론 당사자가 꽂힌 어떤 부분에 대한 몰입이라면 그것대로 인정은 하겠지만 말이다.


재난영화도 좀비영화도 즐겨본 바 없어서 장르적 요소를 얼마나 충실히 따른 건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주요사건과 에피소드 그리고 인물 캐릭터들과 관계들 그 모두가 (다른 사회는 살아보지 않았으니)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느껴지는, 내게는 지독한 사회물이었다. 물론 직업이나 연령, 성별 등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특성에 따른 캐릭터의 전형성은 다소 진부했고 숨 가쁜 상황에서 시전되는 신파 클리셰는 민망한 감도 있었지만, 상업적인 성공 역시 중요했을 대중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할 만한 선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전단지를 보니 주요 등장인물군의 컷과 함께 "아빠가 지켜줄게", "겁낼 필요 없어", "친구들이 아직 못 탔어" 라는 대사가 적혀 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정서는 아니지만 전형적인 감동코드가 없었다면 이렇게 큰 영화가 제작되기 어려울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원인을 알/밝힐 수 없는 사회적 혼란 앞에 '폭력시위' 먼저 깔아놓고 사건의 진실은커녕 현상조차 호도하고 은폐하기 바쁜 정부와 언론, 불시에 들이닥친 위기 앞에 좌충우돌하는 군상들이 벌이는 (이미 공동체일 수 없는 명백한 분리선이 드러난 순간 전면화되는) 적자생존과 각자도생의 사투, 와중에도 함께 살려는 사람은 혼자만 살려고 하지 않고 혼자만이라도 살아남으려는 사람은 결코 혼자 죽지 않더라는 섬뜩한 확인, 그 모든 상황들이 지금 한국 사회의 상징적인 단면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좀비 캐릭터의 이미지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빛과 소리 같은 일차적 자극에 맹목적이고도 발작적으로 집단반응하고 어둠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침묵하며 새로운 자극에는 다시 하늘 아래 첫 자극이라도 되는 듯 반응하는 그 반복이었다. 정말이지 무섭도록 현실 같아서 소름이 다 끼쳤다. 때로는 본질과 무관한 선정보도에 골몰하는 언론을 풍자하는 것 같고, 때로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남을 짓밟으며 사회의 악화를 확산하는 지배세력을 상징하는 것 같고. 슬프게도 주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으며 아등바등 공멸로 향하는 우리 모두를 형상화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딴소리지만 실은 개그콘서트에서 말고는 시각화된 좀비를 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자칫 엄청 유치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좀비들의 연기와 연출 그리고 결과로 펼쳐지는 압도적인 그림이 무척 신기했다. 잘은 모르지만 만화가 출신이어서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고. 아무려나, 좀비라는 가상의 존재를 소환해,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닌- 인간성이 거세되어버린 주체들로 득실거리는 현실을 신랄하게 보여준 것만 같았다.


불의한 작전 지시에 잠시 멈칫할 정도의 양심은 있지만 금세 없던 걸로 치부하는 일상이 당연했던 주인공이, 극한상황에서 고비를 넘기며 다시 태어난 듯 변화했지만 결국 그림자로 사라지는. 억지스런 반전이나 영웅이 없는 전개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영웅도 반영웅도 만들어내지 않고, 그러나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두 사람을 구해내는 결정적인 역할로 이름없는 노숙인을 포지셔닝한 것도 인상적인 구성이었다. 

마지막, 임산부와 아이 그리고 ‘노래의 구원’이라는 다소 도식적인 희망 아이템으로 구성된 터널신은 사실 좀 아쉬웠지만... <핑퐁>의 절멸버튼 같은 게 아무 때나 등장할 수는 없을 테고, 어쨌든 삶은 누군가 이어가야 하니 그런가보다 싶기로 했다. 어쨌거나 묵직하게 현실을 비추고 풍자하면서도 흐름으로 보면 적잖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스토리였다는 생각, 그럼에도 별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주요사건에만 갇히지 않은 열린 영화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엔딩타이틀이 올라가기 시작함과 동시에 극장은 출구를 열어버렸지만 꿋꿋하게 마지막 줄까지 지켜보고 나온 결과, 시선에 따라 엄청나게 반사회적일 수 있는 이 영화의 펀딩에도 부산시창조경제뭐시기니 하는 지원이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개봉 첫날부터 기록을 세웠다는 그 많은 관객 중 얼마나 봤을까 싶게 파이널로 등장하는 ‘특정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자막 안내가, 영화가 정말 전하고 싶은 방백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따져보니 <타이타닉> 이후 처음 본 ‘재난영화’였는데... 재난으로서의 사건을 넘어, 이미 재난상태인 사회의 지금을 비춰주는 영화여서 내심 참 고마웠다. 그리고 잘못 됐다는 걸 알지만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삶의 원리인 듯 대다수가 내면화한 채 살아가는 위계와 차별의식, 가치의 전도 같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줘서 더욱 고마웠다.



20160727,

대한극장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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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