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2. 2. 18. 12:12



비틀즈의 시작부터 1968년까지의 푸티지로 시작된 영화는 1969년 1월 런던 애플 스튜디오에 닿아 작업 중인 멤버들을 비춘다. 흑백 사진 속 멤버 각자의 소년 시절과 함부르크 합주, 리버풀 귀환 후 카번클럽에서의 연주,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눈에 띈 후 멀끔한 청년 밴드로의 환골탈태, 영국 소녀들의 열광과 환호, 미국 진출과 월드스타로의 도약, 구설수에 오른 멤버들의 언행과 언론의 마타도어와 대중의 이반······. 이 모든 파도를 성장통처럼 겪으며 역사 이래 최고의 팝밴드가 된 비틀즈의 마지막 라이브가 해프닝처럼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한동안 완전히 빠져서 유튜브 클립을 엄청 돌려보았던 “Don’t let me down” 루프탑 라이브의 전후 사정을 지켜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고 행복했다. 투어를 중단하고 스튜디어 작업에만 열중하던 비틀즈가 마지막 라이브에 대한 구상을 막 던지며 대화하다가 결국 펼쳐진 것이 애플 스튜디어 옥상에서의 즉흥(?) 공연이었고, 그들은 이 무대를 위해 옥상과 거리와 건물 1층의 로비에 숨겨둔 것까지 10대의 카메라를 곳곳에 설치한다. 연주가 시작되자 거리와 주변 건물의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하고, 소음 민원 신고를 받은 경찰도 등장한다.

 

옥상을 비추는 다섯 대의 카메라는 무대에 선 비틀즈는 물론 관계자와 주변 건물 옥상에서 공연을 즐기는 이들을 두루 비추고, 거리의 카메라는 애플 스튜디어 건물 주변을 지나거나 모여든 사람들을 비추기도 하고 그들 중 여럿과의 인터뷰를 담기도 한다. 1층 로비에 숨겨둔 카메라에는 주로 신고를 받고 출동한 두 명의 경찰이 잡히는데, 영문 모르고 소환된 그들의 경직되고 당황스러운 모습이 조금 안쓰럽기는 했다. 소리만으로 비틀즈임을 알아차리고 공연을 즐기는 거리의 사람들도 시끄러운 소음에 불평하는 사람도, 난처함을 감추지 못하는 경찰도, 모두 '1969년의 라이브'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흐른 세월과 기록의 위대함이 느껴졌고 실은 그들이 매우 부럽기도 했다.

 

10대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의 다양한 화면 분할과 편집은 라이브 공연의 박진감은 물론 각각의 공간(거리 곳곳, 애플 스튜디오의 지하 녹음실과 1층 로비와 루프탑 무대와 주변의 건물 옥상 등)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의 유기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무척 공을 들인 게 느껴졌다. 피터 잭슨이라는 걸출한 감독과 제작진의 노고가 엄청났겠지만, 당시의 해프닝이 반 세기 후의 아이맥스 상영을 예견한 걸까 싶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느꼈다.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벅찬 사운드는 아니어서 처음엔 어?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1969년의 비디오와 사운드라는 걸 생각하면 이렇게 볼 수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일이다.

 

아쉬운 점은 짧은 러닝타임과 다소 빠르다고 느껴졌던 편집이었는데, 여럿으로 분할된 화면을 하나씩 제대로 보고 싶은 욕심에 괜히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던 것 같고 그렇게 큰 화면에 몰입하다 보니 정말이지 시간이 순삭되는 느낌이었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 치고 싶은 걸 겨우 억누르며 그나마 거리두기 좌석이었던 덕분에 옆 사람에게 진동이 가지 않게 살짝 발박자를 맞추는 것으로 대신했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터져나온 박수소리에 반색하며 함께 박수를 칠 수 있어 진심 기뻤다.

 

지난해 알라딘에서 북펀딩한 [비틀즈 : 겟 백]을 띄엄띄엄 넘겨보며 다큐를 언젠가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나중에 dvd로 나올지 모르겠는데 작은 화면으로 보는 건 영 기분이 안 날 것 같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아이맥스 상영해주면 좋겠다. 아무려나, 수많은 비틀즈마니아들의 가장 말석에 속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라이브도 이렇게나 힙하고 멋지다니, 비틀즈 최고.



2/13 cgv서면 IMAX


 

'빛의걸음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 세상이 하얗다]  (0) 2022.02.18
[나의 촛불]  (0) 2022.02.18
[인어가 잠든 집]  (0) 2022.02.04
[어나더 라운드]  (0) 2022.02.04
[킹메이커]  (0) 2022.02.04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