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0. 7. 29. 04:04



인생의 목표가 오직 대입 시험인 재수반, 미래를 결정하는 대학 입시를 과녁 삼은 전투적인 구호들이 나부끼는 학원의 아이들은 측면의 시야를 가린 경주마처럼 각자의 책상에 책을 잔뜩 쌓아둔 채 공부에 몰두하기를 강요당한다. 푸른 교복을 맞춰 입은 수백의 학생들은 그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존재하는 집단처럼 보이지만, 경쟁과 돌진의 규율 속에도 당연히 제각각의 고통과 사연이 있다. 우정과 연대가 자리할 틈 없는 공간에서 고통은 서로에게 가해지는 것이기도 하고 사연은 그 고통을 배가하고 현재의 행복을 훗날로 유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공부 잘하는 똑똑한 딸의 대학 학비를 장만하기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힌 건 엄마도 마찬가지, 가족이 가난과 설움을 벗어날 유일한 길은 교육과 학벌을 통한 도약이기에 첸리엔의 목적은 오직 베이징대학 입학이다. 그를 위해 엄마는 종종 부작용이 발생하는 마스크팩을 떼다 팔거나 남의 돈을 떼먹거나 하는 식의 불법적인 일을 그만둘 수 없고, 지속하기 위해 딸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의 공격과 멸시와 수모는 오롯이 딸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미음(ㅁ)자의 높은 건물인 학원을 때로 관객은 판옵티콘의 정점에 선 듯 바라보게 되는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목격하게 되는 것은 누군가의 투신. 한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의 죽음은 아이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이지만 한편 그냥 가십이거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한 ‘루저’의 선택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눈앞에서 벌어진 죽음 앞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방관자의 렌즈를 들이대고, 오직 한 명 첸리엔만이 자신의 체육복 점퍼를 벗어 그에게 덮어줄 뿐이다.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지만, 베이징대를 향한 질주에 방해를 받고 싶지도 학교폭력의 고발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경찰이나 학교가 별로 미덥지도 않은 첸리엔은 무기력하고 무심하게 그 상황을 넘기려 애쓴다.

 

해 저문 뒤 인적이 끊긴, 우범지대처럼 을씨년스러운 귀가길은 스릴러의 한 장면인 듯 불안하고 영화에는 그런 씬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 어둠의 구석에서 걸어나온 샤오베이, 모범생 첸리엔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듯한 거칠고 고독한 소년은 어느새 그림자처럼 첸리엔과 나란하다. 잔혹한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 지옥의 경쟁 속엔 이유 없는 폭력이 난무하고 끝도 없이 만들어지는 피해자들은 믿을 구석이 아무 데도 없지만... 서로를 알아보고 지켜주려는 첸리엔과 샤오베이의 안간힘이 눈물나는 무거운 영화였다.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은 니가 처음이야" 샤오베이의 말에 마음이 저릿해졌다. 



7/28 cgv영등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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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