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 말고는 아는 바가 없지만 이름만은 친근한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엄마의 죽음’을 다룬 책이라는 사실 때문에 궁금했다. 하지만 막상 읽으려 들면 괜히 불길하고 무서운 마음이 들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고, 추석에 오랜만에 엄마를 보고 온 후에 작심한 듯 읽었다.
비교적 얇은 책이고 번역자의 친절하고 깊이 있는 해설이 덧붙여져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끝까지 읽고서도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문구 자체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죽음을 금기시하고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현대인의 한계 속에서도, 점점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을 떠올릴 때 죽음이라는 것이 마냥 멀리 있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엄습하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인 집에서 낙상사고를 당해 전화기까지 두 시간을 기어 외부에 연락하고 병원에 입원한 저자의 엄마는 암 판정을 받는다. 본인에게는 복막염이라 속여 수술을 하고 회복을 바라면서, 저자는 죽음에 가까이 가는 엄마를 곁에서 돌보고 지켜보며 오랜 반목의 대상이었던 엄마를 새롭게 발견하고 화해한다. 자신을 성장시켰던 지금의 자신보다 젊었던 엄마는 가부장적 세계에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한 채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며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부정당한 무수한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 속에서 건져올린 엄마의 다양한 모습들이 활자로 되살아난다. '나에게는 권리가 있다'며 아이들만의 세계에 기어이 끼어들곤 하던 젊은 시절의 엄마, 지적이고 자유로운 아빠의 그늘에서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던 아내였던 엄마, 부담스럽게 똑똑한 딸을 무서워하면서도 그 성공을 자랑스레 여기는 엄마,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의 삶을 진취적으로 꾸려가던 엄마, 마침내 삶의 마지막에 닿아 아이처럼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게 된 한 사람.
구체적인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어쩌면 모든 엄마와 딸이 느끼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집약해놓은 듯한 책이었다. 멀리에 나이든 엄마가 있는 딸로서, 착잡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 / 강초롱 옮김
2021.4.10초판1쇄, (주)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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