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9. 6. 17. 01:21


너무 잘 나가서 때론 얄밉지만 어지간하면 읽게 되는 작가, 딱히 그렇게 생각할 근거도 없는데 어쩐지 까칠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에세이는 꽤 따뜻하다.
‘여행의 이유’라는 평이한 제목으로 묶여나온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여행의 이유’를 자전적인 경험과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사실과 해석을 통해 이야기된다. 그의 에세이를 그런대로 읽어왔는데, 기억에서 사라진 탓인지 이번에는 꽤 깊숙한 자신의 이력들과 개인적인 신변의 이야기들까지 꺼냈다는 느낌이다.
이제 오십대가 된 그가 반평생 이상 글쓰기만큼이나 일상적으로 해온 갖은 여행들이, 여행기가 아닌 에세이 속에 들어있다. 중국 비자를 받지 않아 한 달로 계획했던 집필여행이 공항에서 끝나고만 몇해 전 중국행 그리고 동구권의 몰락과 천안문사태 등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동시대의 뉴스로 접한 운동권 학생의, 결과적으로는 회심의 상징적 계기였을 수 있는 국가와 자본이 제공한 첫 해외여행의 기억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렇게나 한국을 자주 떠나있었는지는 몰랐는데, ‘검은 꽃’이니 하는 해외배경의 소설 집필을 위한 여행만이 아니어도 그는 꽤 오래 해외 장기체류를 비롯한 여행을 했던 모양이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거의 매년이다시피 이사와 전학을 다니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던 유년의 경험으로부터 그는 자신이 수십 년째 꾸준히 하고 있는 여행의 이유를 찾는다. ‘길가메시’와 ‘오디세이아’ 등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난의 모험으로서의 여행부터 ‘추구의 플롯’을 통해 방황하고 성장하는 현대의 수많은 문학과 영화의 이야기들이 빗대어진다. ‘오디세이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인용되는 김형경의 ‘사람, 장소, 환대’가 어쩌면 그 역시 동의하는 여행과 인생의 핵심이다. 말미 작가의 말에서 썼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결국 여행자이며, 그 여행이 가능한 것은 반려 혹은 동행 그도 아니면 대가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대’라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나에게 새겨진 김영하의 이미지와는 딱 들어맞지 않아 사실 의아하면서도 결국 사람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도 나이를 먹고 있다는 느낌도. 
유구한 역사 속에서 줄기차게 모험하고 방랑해온 인류 그리고 줄곧 여행하는 자신에 대한 탐색이 닿는 곳은 결국 그 어떤 거창하고 화려한 세계가 아니라 나 자신과 나를 받아들여주는 타인의 환대, 그 관계에 대한 고마움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김영하
2019.4.8초판인쇄 4.17초판발행, (주)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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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