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1. 7. 15. 12:55



경기도 고양시에서 스무 평 텃밭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저자가 어느 해 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의 농사와 일상을 정리한 기록이다. 책을 펼치니 다섯 쪽에 꽉 들어찬 촘촘한 목차들이 먼저 눈에 들어와 약간 멀미가 이는 기분이었다. 책의 문제는 아니고, 자발적 선택으로 시작된 독서가 아니기 때문일 터. 지난 달 시작한 식물-글책모임의 두 번째 책이었는데, 첫 모임과 달리 글의 주제도 내게는 하염없이 부담스러웠던 데다 텃밭의 경험이 없기에 책에서도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두 달간의 재택알바가 끝난 뒤라 다행이다 생각하며, 충분히 소화하면서 읽어보자 했는데 주리를 틀어가며 의무감으로 읽어내야 했다.

주변 이웃들의 잔소리나 염려를 유쾌히 받아넘기면서 딴짓도 명상도 산책도 해가며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 저자의 글은, 딱히 농사 이야기라기보다 부제처럼 '텃밭 중심 라이프'에 관한 이야기였다. 책은 텃밭에 관심이 있거나 조금이라도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갑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도 많이 소개하고 있다. 특히 '농부의 말'이라는 꼭지에는 저자의 이웃이자 농사 멘토이며 텃밭공동체 활동을 이끄는 상린 농부의 경험과 의견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천 평 농사를 짓는 직업농이자 초보 텃밭 농부들의 든든한 기댈 언덕이 되는 분과 함께 사시사철 가까운 이웃으로 지낼 수 있는 저자의 환경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혀 자연친화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중에 늦게나마 식물에 대해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지려다보니 괜한 자격지심과 조바심이 일곤 하는 독자의 마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실은 식물만이 아니라 자주 그러한데, 책을 읽는 일은 몰랐던 세계에 대해 아주 조금 알게 되는 일이면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신랄하게 알게 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나는 관심 밖의 자족적인 수다나 누군가의 가벼운 자기도취에도 너그럽지 못한 인간이라는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움직이는 일상으로 바꿔내지 않는다면 이런 불퉁한 마음은 쉬이 변하지 않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지금은 그렇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려나 다 읽은 기념으로, 책에 나온 대로 얼마 전 현관 밖으로 자리를 옮긴 방울토마토의 가지를 솎아주었다. 3월에 씨앗으로 만나 넉 달여 만에 어엿한 나무(?)가 된 방울토마토는 베란다에서 무럭무럭 자라며 날벌레들을 잉태하기 시작했고, 베란다와 연결된 침대방의 방충망 없는 창으로 날아드는 작은 벌레들은 불청객이었다. 한 번 솎아주었음에도 꽤 튼튼하게 성장하고 있는 여섯 주의 방울토마토 중 네 주를 지인에게 넘기고 두 주만 남겨 현관 밖으로 내놓은 것이 6월 말이었다. 열매는커녕 꽃 필 기미도 없지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던 방울토마토는 가지를 솎아준 며칠 후 작은 꽃을 피웠다. 개화의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열매까지 맺을지도 알 수 없지만 반갑고 신기한 일이다.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소하지만은 않은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셀러리'와 '밭치다'라는 표기, 당연히 '샐러리'와 '받치다'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반복되니 거슬리고 짜증이 나서 찾아보았다. 국립국어원 사이트 설명에 따르면 '셀러리'는 '「명」『식』산형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 '밭치다'는 '건더기와 액체가 섞인 것을 체나 거르기 장치에 따라서 액체만을 따로 받아 내다/구멍이 뚫린 물건 위에 국수나 야채 따위를 올려 물기를 빼다'는 의미였다. 알지도 못하면서 자만하고 있었구나, 배우고 반성했다.



정원
2019.11.8.1판1쇄인쇄 11.15.발행, 피그말리온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것 아닌 선의]  (0) 2021.07.27
[우리가 사는 방식]  (0) 2021.07.27
[어쩌면 동심이 당신을 구원할지도]  (0) 2021.07.15
[헝거]  (0) 2021.06.18
[그림책이라는 산]  (0) 2021.06.17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