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2021. 2. 21. 22:36


무려 일을 하였다. 엄청 싫지만 해야만 했던, 일하던 단체에서 내는 책의 내가 쓴 부분 조판본 1교 및 수정. 초고를 2018년에 썼나 그랬고 일이 밀리고 밀리면서, 2019년 말엔가 최종본을 넘겼으나 또 밀리고 밀리는 사이 여러 상황이 변해 내용을 부분적으로 수정했었다. 그러나 일은 또 밀리고 밀렸고, 그만둔 후에 그 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6월 말에 그만두고 7월 중순에 진짜 최종본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책은 어떤 큰 주제에 대한 길라잡이식의 공동집필서, 단체 활동가들이 한두 챕터씩 나눠 집필하는 거였고 나는 두 챕터를 a4 10장 정도 분량으로 썼다. 글 쓰는 걸 아주 싫어하지는 않지만 마음에 없거나 잘 모르는 분야라서 새로 공부해야 하는 글을 쓰는 건 많이 싫어하는데(게으르니까), 단지 그런 이유로 빼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처음 기획안이 제출되고 회의를 시작한 게 2017년 상반기, 담당자는 엄청나게 의미를 부여하며 자주 관련 논의를 공유했고 2019년 출간을 목표로 했으나 진행은 더뎠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니 일사천리가 될 수 없는 건 양해하지만, 거창하고 활발한 계획과 논의 단계를 지나 진행 과정에 대한 점검은 유야무야. 편집자의 사정까지 더해져 애초 목표했던 시기를 한참 지나버렸고, 일정 부분 불가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사실 어이없는 일이다. 어쨌든 남은 공정이 있으니 일 그만둔 후 단체의 누군가 마주칠 때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두어 번 물었었는데, 발간 시기도 중요하니 2020년은 넘기고 2021년에 내기로 했다는 답을 들었고 아연했다. 글을 다시 고칠 게 아니라면 그런 고려 대신 빠른 진행이 맞는 것 같은데, 솔직히 오만한 발상이라고 느꼈고 괜히 민망해져서 그럴 수만 있다면 내 글은 빼달라고 하고 싶었다. 암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책이 조만간 나오기는 할 모양인지 2월 17일에 조판본 1교가 전달됐다. 언제까지 달란 말도 없어서 주말까지 보내겠다 하고 오늘 오전 11시에 공유된 파일들을 열었다. 교정은 기계적으로 볼 수 있는 거니까 하기 싫은 마음만 달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12월에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버려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보완해야 할 분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끝났다고 생각해 털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살피고 되짚는 일은 생각보다 짜증이 났다. 실은 안 끝났는데 그렇게 생각한 내 불찰도 있지만, 그보단 그냥 이 작업 자체에 대한 짜증이 더 큰 것 같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꽤 싫어하게 된 주황색으로 일기를 쓴다. 정확히 10시 4분에 일을 마쳤고, 실제 일한 시간은 3시간이 채 안 되겠지만 너무 하기 싫어서 마음으로도 계속 주리를 틀었으므로 오늘은 감정노동까지 꽤 한 셈이다. 다시 보고 싶지 않아 꼼꼼히 봤으니 2교는 그냥 검토만 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자기 전까지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평정심을 되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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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