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2021. 2. 24. 23:49


지난주에 싸다고 영화 막 보고서 반성해놓고 이번 주에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할 뻔했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다섯 편을 홀린 듯 예매했고, 모두 롯데시네마에서 1천 원 관람쿠폰 이벤트를 하는 영화들인데 그중 정말 보고 싶은 건 [라스트 레터] 하나였다. 오늘은 이어 볼 수 있는 시간에 상영하고 로버트 드 니로, 우마 서먼, 크리스토퍼 월켄 등이 나온다기에 [워 위드 그랜파]를 함께 봤는데 시작부터 자막에 제공 ㈜티브이조선미디어렙이 뜨더라ㅠ 막내 손녀 제니역의 배우가 너무나 귀여워서 나올 때마다 행복했고 대배우들의 유머러스한 연기도 좋았지만 그냥 웰메이드 가족 영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영화였는데... 해서 정신줄 잡고 일단 나머지 영화들은 취소했다. 


기절베개를 사용한 지 이틀째다. 첫날은 자고 일어나니 오른쪽 뒷목이 종일 엄청 뻐근했는데 오늘은 뒷목이 전체적으로 종일 불편했다. 첫날은 첫날이라 정말 기절하나 보자 하며 누웠는데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할 수 없고, 어제는 잠이 안 와서 한참을 뒤척였다. 기절베개 받았을 때 택배상자 안에 엄지손가락 절반 정도 크기의 돌멩이가 들어있었다. 무지 당황스러웠고 뭐지 싶어 안 버리고 현관 바닥에 놔뒀는데, 기절베개 사용한 이틀이 다 불편하고 보니 그걸 볼 때마다 돌의 저준가 하는 시덥잖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돌을 깨끗이 씻어서 머리맡에 두기라도 해야 하나?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어떤 컨디션일지 궁금하다.


토요일에 사촌이 온다. 대구와 서울에 살았지만 어렸을 적엔 방학이 되면 대구 외할머니 댁에서 만나 며칠씩 놀았고, 어른이 된 이후에는 몇 년에 한 번씩 뜸하게 만나지만 동갑이라 친구 같은 사촌이다. 2013년에는 숙명여대 르 꼬르동 블루에 다니느라 대구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집에 와서 함께 지냈는데, 관심사나 취향은 다르지만 나이 먹으면서 몇 안 남은 편하고 말이 잘 통하는 친구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재작년 여름, 대구에서 디저트카페를 하는데 휴가를 맞춰 며칠 문을 닫고 우리집에 와서 맘먹고 함께 놀았다. 르 꼬르동 블루 다닐 때 이후 오랜만에 서울에 놀러온 사촌과, 머지 않아 오래 살았던 서울을 떠날 계획인 나는 8월 초 3박 4일 동안 부지런히 곳곳을 싸돌아다녔다.


하루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를 보고 익선동과 인사동 북촌 광화문을, 다음 날은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체험전을 보고 망원시장을 구경하고 홍대 앞과 경의선 숲길을 걸었다. 다음 날은 예의상 엄빠네 가서 밥 먹고서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을 보고 여의도 한강공원 밤도깨비야시장 구경하고 밤에 공연을 봤다. 카페하는 사촌 덕에 익선동 '경성과자점'이며 홍대 앞 '몽카페 그레고리' 같은 데를 가봤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지나치며 나중에 언젠가 했던 '아이다호'와 '공간 비틀즈'는 결국 가보지 못했다. 폭염 속에 돌아다니다가 너무 더우면 다이소에 들어가서 잠시 땀을 식히고 또 돌아다니고 하면서 늦은 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나이에 뭔 극기훈련이냐며 에어컨 틀어놓은 거실에 나란히 편 이부자리에 누워 즐거운 수다를 떨었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 돌이켜 보니 새삼스럽고 그리운 시간이다.


사촌이 오기로 한 날짜를 정한 뒤부터 열흘 정도까지의 예보가 나오는 아이폰 날씨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본다.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함께하기로 한 날들을 포위하듯 계속 비였던 예보는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토요일에 반짝 햇님이 떴었는데 그제부터는 토요일 바람, 일요일 햇님, 월요일 비다. 오랜만의 여행에 날씨가 안 좋으면 괜히 내가 미안할 것 같아 연락했더니 나 보러 오는 거기도 하고 날씨는 상관없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날씨가 극적으로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주에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도 모르게 5일 남았네, 4일 남았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4시에 오기로 한 친구를 생각하며 3시부터 행복해질거라던 [어린 왕자]의 여우가 떠오른다. 3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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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