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6. 8. 5. 01:00


한창 때처럼 신간정보를 챙기거나 하지 않는 대신 언제부턴가 온라인서점 검색창에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쳐보는 버릇이 생겼다. 윤대녕은 습관적으로 꼭 쳐보는 두 사람 중의 하나, 낯선 표지에 반색했는데 십년 전 출간됐던 <어머니의 수저>를 <칼과 입술>로 고쳐낸 거였다. 

'맛 산문집'이 대체 뭐냐며 그때도 혼자 툴툴거리며 책을 사봤고 사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감흥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감히) 잘 쓰면 예뻤을지 모를 테마색이 표지에서도 간지에서도 튀면서도 촌스러운 느낌이라 먼저 당황했다. 컬러만이 아니라 표지와 간지에 들어간 사진들과 배치도 딱히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는 느낌에 '추억과 향수의 아른함' 정도의 관성적인 감성 표현을 목표한 걸까 싶어 읽는 내내 의아했다.

다행인 것은, 아무리 좋아한다한들 2006년 12월에 읽은 책의 내용을 내가 기억할 리 없다는 것. 드물게 어렴풋한 기시감을 주는 구절과 대목이 있었지만 대체로는 새로웠고, 그럼에도 역시나 별 감흥은 없었다.

십년 전 '맛 산문집'의 출간에 심드렁했던 이유는 분명 윤대녕 작품에 덧입혀놓은 나만의 색깔과 이미지가 방해받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연중에 구원과 회귀, 내면으로의 침잠, 방랑과 우울 따위를 그의 키워드로 새기며 십년을 꼬박 신간이 나올 때마다 필터 삼아 그의 글을 읽었고 만족스러웠던 터였다. 그러한 독서 속에서 윤대녕 혹은 그의 주인공은 입이 짧아야 했고 탐식을 해서는 안 됐으며, 현실에의 타협 없는 고뇌로 삶의 의미를 간구하는.. 식물성의 정신적인 존재로 유폐되어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윤대녕에 푹 빠졌던 90년대 중후반 이후 실은 오랫동안 그랬던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떨리며 설레어하며 처음 만난 그의 말투와 음성은 더도 덜도 아닌 윤문식 그 자체였음에도 말이다. 그렇다, 팬은 이렇게 일방적이고 또 무책임한 것이다. 

아무려나 십년 만에 고쳐써 다시 낸 책을 다시 읽어내는 것은 팬을 자처하는 독자가 성실히 수행해야 할 몫이다. 하여 열대야의 한 중간 나는, 이미 십여 년 전에 스스럼없이 '아내'와의 일화를 글로 적었던 '생활인' 윤대녕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런(?) 폐쇄적이고 소아적인 읽기를 이제는 그만 둘 때임을 자각했다. 사실 개인적인 편견과 왜곡된 로망을 걷어낸다면 책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저 글쓰는' 사람으로서 윤대녕이 어찌 나쁠 수 있겠는가.

십년 전 책의 말미에 작가는 "이 책을 어머니 몰래, 어머니께 바친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 책의 머리와 말미에 다행히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의 이야기와 함께, 이번에는 책을 먼저 갖다드릴 생각이라고 적고 있다. 한편 '맛 산문집'이라고 심드렁해 했지만 젊어 갖은 외국음식을 즐겼던 작가가 장년의 어느 시절 심한 거식증을 앓은 이후 한국의 입맛을 통해 치유되고 길들여지고 이런 책까지 펴낸 것이 결국 어떤 회귀 그 자체인지 모르겠기도 하다. 

"수저질을 배운 순간부터 우리는 늘 불완전한 음식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그 불완전함은 곧 삶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절들 때문에 나는 그가 어떤 글을 쓰든 찾아 읽고야 만다. 다분히 윤대녕스러운 분위기는 전체를 관통하고 있지만 거론하는 음식의 내력과 유래에 쓰인 말의 어원은 물론 문화적 기원과 사회적인 분석에 이따금의 작은 제언까지, 소설이나 다른 에세이와는 색다른 글이기도 한 게 사실이다. <자산어보>와 <현산어보를 찾아서>부터 각종 음식문화를 다룬 문헌과 사료를 출처로 한 구체적인 기술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칼국수가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할 당시 들어온 유목음식이었다는 것을 포함해 다양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기도 했다. 물론 십년 전 독서 때와 마찬가지로 사흘 안에 거의 다 까먹겠지만 말이다. 

두서없는 횡설수설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분명 쇄를 거듭할 테니 드물게 발견된 두 군데의 오타 지점을 기록한다. 256쪽 아래서 세 번째 줄과 273쪽 아래서 네 번째 줄을 마음산책은 유심히 봐주시기 바란다.


2016.6.15 1판1쇄인쇄 6.20 1판1쇄발행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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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