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대략 200분쯤 세상 우울하고 나머지 34분쯤 세상 부조리극 같은 영화였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의 아내와 바람 피는 현장을 들키고 눈 앞에서 그 친구가 투신하는 광경을 목격한 위청, 후에야 알았지만 비리로 경찰복을 벗은 아버지의 저주를 한몸에 받고 학교에서도 나중에 꼬치나 팔 거라는 악담을 들으며 학교폭력에 휘말려 가해자가 된 세이부, 부도덕한 학생부주임과 원조교제를 하며 늘 어질러진 집안에서 엄마와 마주치기만 하면 싸우는 황링, 연금도 집도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자식들에게 빼앗기고 요양원에 보내질 처지로 몰리는 왕진 그리고 그들과 관계되었거나 사건으로 얽히는 등장인물들이 무려 234분 동안 어디에서도 본 적 없이 우울하고 황폐하고 지옥 같은 일상의 단면들을 선보인다.
등장인물들은 아이와 노인을 제외하면, 주조단역을 막론하고 살아간다는 게 원래 그런 것이라는 듯, 서로 모욕하고 상처주고 탓한다. 자신과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친구의 죽음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상대 때문이고, 원조교제가 드러나 앞길이 막히게 된 것은 학생의 탓이라는 식이다. 하나같이 엉망진창이 된 일상에서 절규하듯 살아가면서, 우연히 마주친 이들끼리도 죽어버리라는 욕설을 인사처럼 내지른다. 물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런 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불신과 오해로 점철된 관계 속에서 누구나 황무지 같은 세상을 각자도생으로 헤쳐나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만저우리 동물원에 있다는, 언제나 한 자리에 앉아 있다는 코끼리는, 그런 그들 중 여럿에게 어떤 이상향이다. 지난한 일상의 탈출구인지, 그럼에도 견뎌야만 하는 일상의 알리바이인지 알 수 없지만 여튼 개중 몇은 그 코끼리를 보러가는 일을 마음에 품고 모멸의 날들을 버틴다. 그리고 온통 오염된 관계들 속 그나마 서로를 받아들였던 세이부와 ㅇㅇ, 노인과 아이만이 어느밤 그곳을 떠난다. 원했던 만저우리까지의 기차는 어떤 이유인지 취소되었지만 선양까지 버스를 타고 잠시 정차한 어느 시골 강기슭에서 그들은 환청처럼 들려오는 코끼리 소리를 듣는다.
정성일 평론가의 gv를 확인하고, 과연 이 길다란 영화를 ku까지 가서 봐야 하는가 고민하며 정보를 찾아봤었다. 1988년생이라는 흑백 프로필 사진 속의 감독은 이미 2년 전 고인이 되었다 하고, 어느 영화제에서 뒤늦게 그의 어머니가 수상을 했다고 했다. 그는 일찌감치부터 소설을 쓰고 영화 작업도 꿈꿔온 젊은 예술인이었고, 4시간 가까운 영화를 반토막 내려는 업계의 영향력 있는 제작자로부터 큰 압박을 받고 갈등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후 영화제에 출품된 4시간분량의 영화는 크게 호평을 받으며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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