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바닷가 시골마을의 소년들은 거칠고 위악적이다. 딱히 필요도 없는 물고기를 잡아 잔인하게 죽이고 그중 못생기고 튀는 물고기에는 의미없는 고통을 가하는 폭력적인 장난이 일상이다. 거칠고 거침없는 소년들의 또래 문화는 마을의 분위기이기도 하다. 농담이든 장난이든 상대방의 상처를 건드리고 약점을 잡아 소문을 퍼뜨리며 누군가를 궁지로 몰고가는 것에 제동을 걸거나 주의를 환기하는 이는 없다.
그 속에 언제나 단짝으로 붙어다니는 토르와 크리스티안이 있다. 매사가 성적인 관심사와 결부되어 있는 사춘기 소년 토르는 베스를 좋아하지만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2차성징도 느린 걸로 곧잘 놀림을 받다 보니 자신이 없다. 그런 토르와 늘 함께하며 때로는 형처럼 그늘을 내어주기도 하는 크리스티안의 마음은 늘 토르를 향하지만 그런 스스로를 자제하며 주변 소년소녀들과 보조를 맞추느라 베스의 단짝 한나에게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딱히 사건이랄 것도 몇 없이 2시간을 꽉 채우는 영화는 스토리보다 앵글과 분위기, 이미지가 압도적이다. 거의 모든 것을 성애화된 감각과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춘기 소년소녀들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은 대체로 끈적하고 집요하다. 반면 배경으로 등장하는 아이슬란드의 웅장하고 시원한 풍광은 이국적인 느낌과 동시에 난마처럼 얽힌 인물들의 감정과 복잡다단한 인간사와 대비되어 영화에 개방감을 더한다. 마을과 소년들을 지배하는 보수성과 폐쇄성은, 의미없이 잡혔다 방치되어 썪어가는 물고기들이나 미친 개에 물려 죽임당하고 태워지는 양들 혹은 깃털이나 뼈만 남아 바닷가로 떠내려온 각종 동물들의 사체들을 통해 은유된다.
토르 역의 배우는 어린 시절 리버 피닉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목구비를 가졌다. 날카롭고도 깊은 눈매와 예리하게 솟은 콧날, 앙다문 입술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리버 피닉스의 환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다호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속 시원히 드러낼 수 없는 애타는 마음을 안고 토르 곁에 머물며 맴도는 크리스티안을 연기한 배우 역시 유약하면서도 한편 강인하고 또 애틋함을 담은 경계에 선 존재의 캐릭터를 잘 연기해 눈길이 갔다.
4/30 cgv구로10 h7
'빛의걸음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Che, 체 게바라] (0) | 2019.09.09 |
---|---|
[비틀즈: 하드 데이즈 나이트] (0) | 2019.06.17 |
[어느 가족] (0) | 2019.03.10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0) | 2019.03.10 |
[가버나움] (0) | 2019.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