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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에 살고 있는 37살 동갑내기 친구 아카리, 사쿠라코, 후미, 준의 나들이로 영화는 시작된다. 직업도 상황도 다른 네 친구 중 사쿠라코와 준은 중학교 동창, 준을 통해 서른이 넘어 만난 아카리와 후미도 절친이 되었다. 모처럼의 당일치기 소풍으로 산 정상을 찾았지만 비와 안개로 기대했던 경치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네 사람은 각자 싸온 음식들을 나누며 즐겁게 수다를 떤다. 내친 김에 1박 2일 온천 여행을 계획하고, 후미가 준비하는 얼마 후의 워크숍에도 참여하기로 한다.
아카리는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한다. 맡은 일에 똑부러지고 후배 간호사가 어려워하는 일도 능숙하게 처리하는 베테랑이다. 사쿠라코는 전업주부다. 만사가 시큰둥한 중학생 아들과 일에 바빠 집안 사정은 뒷전인 남편, 그리고 지금은 함께 살던 시누이와 싸운 시어머니가 집으로 와서 지내고 있다. 아트센터의 기획자로 일하는 후미는 출판 편집자 남편과 산다. 남편은 후미를 픽업해 함께 귀가하고 일찍 퇴근할 때면 알아서 저녁을 준비하는 다정한 사람이다. 거실에서 잠든 남편에게 덮어준 담요나 잊고 나간 차 열쇠를 챙겨주는 것 같은 작은 일에도 고마움의 표현을 잊지 않는 두 사람은, 격의 없는 부부라기보다 예의를 갖추고 함께 살아가는 동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후미가 일하는 아트센터는 항구의 옛 건물을 개조한 '포르투'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사람들이 들고나던 교차점에 위치한 건물은 원래의 용도 대신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후미와 후배 직원은 쓰나미가 닥쳤던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와 각종 잔해들을 세우는 작업 등을 통해 주목받은 예술가 우카이를 초청해 "중심"과 관련한 워크숍을 준비 중이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주제에 별다른 설명이 없는 워크숍 안내문으로 참여자를 모으기는 쉽지 않고, 세 사람은 각자 주변에도 홍보를 하기로 한다.
워크숍 당일, 아카리와 사쿠라코와 준을 포함해 열 명 정도의 참여자가 모였다. 정확한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는 경직된 분위기가 흐르고, 우카이는 "중심에 귀기울이기"라는 화두를 던지며 의자 세우기, 서로를 의지해 한 번에 일어나기, 상대의 중심인 단전의 소리 듣기, 이마를 맞대고 상대를 바라보기 등의 신체 워크숍을 진행한다. 어딘가 어설프고 억지스럽게도 보이지만 함께 몸을 움직이고 호흡하는 과정은 공간에 가득했던 긴장을 서서히 휘발시킨다. 정신 없는 일상에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고요하게 집중할 겨를이 없었던 이들에게는 신선한 경험이기도 하다.
워크숍이 끝난 후 모두가 함께한 뒤풀이에서는 서먹함도 잠시, 참여자들은 의외로 편하게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워크숍 직후 음료자판기 앞에서 사쿠라코에게 서툴게 작업을 걸던 카자마는 자신의 결혼과 이혼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고, 상대의 외도로 이혼한 후 싱글로 살고 있는 아카리는 그의 옆으로 자리까지 옮겨가며 호응한다. 솔직한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준은 사쿠라코에게만 언질했던 자신의 외도와 이혼 소송 이야기를 꺼내고, 외도와 비밀에 대한 배신감에 흥분한 아카리는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리를 뜬다.
담담히 마음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분위기를 망치고 갈등을 야기한 셈이 된 준, 사쿠라코는 의기소침한 준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사쿠라코의 아들과 인사를 나눈 준은 출근하는 사쿠라코 남편의 차를 얻어타고 집을 나선다. 준과 사쿠라코와 남편은 중학교 동창, 준은 호감을 가진 둘을 연결시켜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쿠라코를 통해 준의 사연을 알고 있는 남편은 당분간 사쿠라코를 불러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입시를 앞둔 아들 핑계를 대지만, 얼핏 문제 없어 보이는 자신의 가정과 사쿠라코에게 미칠지 모르는 좋지 않은 영향을 염려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준의 남편 코헤이는 과학자로, 모든 것을 논리와 인과관계의 정합성에 의거해 사고하는 유형이다. 짧지 않은 결혼 생활 동안 준은 노력했고 외로웠고 변화했고 용기를 냈다.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애쓰던 몇 년 동안 준은 서서히 지쳐갔고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코헤이에게 정서적으로 학대당했다고 느꼈다. 온기가 담긴 대화와 교감을 원했던 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코헤이에게 그들의 결혼 생활은 문제 없는 것이었고, 이혼 요청은 '준을 사랑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준의 재판을 방청한 친구들은 준이 그동안 홀로 감내했던 깊은 외로움에 공감하며 위로를 보낸다. 공감과 위로는 어쩌면 모른 체하며 덮어두었던 자신에게도 향하는 것인지 모른다.
친구들은 약속했던 온천 여행을 떠난다. 후미의 남편 타쿠야가 담당하는 신인작가 노세가 마침 온천을 주제로 한 작업을 하며 그들의 여행지에 머물고 있다. 타쿠야는 기사를 자청해 네 친구를 내려주고 노세에게 간다. 마을의 천변을 산책하던 네 친구는 건너 편에서 나란히 걷는 타쿠야와 노세를 목격한다. 후미와 함께일 때보다 편하고 자연스러워보이는 모습이다. 폭포 앞에 닿은 네 친구는 즐겁고, 활기에 찬 준은 한 여행자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한다. 적극적으로 포즈를 주문하며 성의를 다해준 그의 덕분에 네 친구의 한 순간이 멋지게 박제됐다. 숙소로 돌아와 유카타를 입고 둘러앉은 친구들의 수다가 이어진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몰랐던 속사정과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네 친구는, 반쯤은 장난을 섞어 마치 처음 만난 사이처럼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한다.
온천 여행에서 친구들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후미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썼다. 타인에게 맞춰주고 배려하는 데에 익숙한 후미는, 그게 원래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마음 속에 이는 감정들을 스스로 눌러왔는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포르투에서는 노세의 낭독회가 열릴 예정이다. 일과 사생활을 분리해온 후미와 무관하게 타쿠야의 기획이 선정되었고 담당자는 후배이지만, 후미도 엮여들 수밖에 없다. 타쿠야는 아직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신인작가 노세의 작품세계와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며 집에서도 자주 입에 올린다. 크게 봐서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둘에게 작가에 대한 언급은 익숙한 일이지만, 타쿠야가 노세에게 느끼는 감정적 친밀감은 후미보다 가까워보인다.
온천 여행에서 모두가 떠나고 홀로 여행하던 준은 폭포에서 사진을 찍어준 여행자와 버스에서 마주쳤었다. 수다스럽게 자신의 사정을 늘어놓던 그는 준이 이혼 소송 중이라는 말에 당황한 듯 보였고 마침 목적지에 닿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급히 내렸다.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과 지난한 이혼 소송을 겪으며 준은 무엇보다 다정함과 솔직함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지 모른다. 용기 낸 준에게는 오해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단과 내면의 힘이 느껴진다. 버거운 육체노동도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오르는 가파른 계단도, 준에게는 둘이어서 더 외롭고 괴로웠던 결혼 생활보다 견딜 만한 일상이다. 하지만 요지부동으로 재결합을 원하는 코헤이는 준의 집으로 찾아오고, 집요한 의지를 재확인한 준은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채 자취를 감춘다.
당차게만 보이는 아카리에게도 사정은 있다. 관록과 완벽주의로 정평이 난 수간호사이지만 병원일은 혼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마음과 달리 거리감을 느끼며 편하게 의지하지 못하는 후배 간호사 유즈키는 실수를 거듭하고, 환자에게 위험할지 모를 상황이 발생한다. 나름대로 다스려오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아카리는 계단에서 구르고 목발 신세가 됐다. 평소 여릿하게 호감을 표하던 의사는 아카리를 챙겨준답시고 집까지 바래다주고 추근댄다. 보람과 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에 병원일에는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하고, 홀가분한 싱글로 살고 있지만 아카리에게 마음과 일상을 나눌 누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사쿠라코의 일상도 그 사이 크게 출렁거렸다. 손자가 여자친구를 데려왔더라는 시어머니의 조심스런 전언 이후 여자친구가 임신했으니 낙태할 돈을 달라는 아들의 고백과 요구가 이어졌다. 가족회의가 열리고 여자친구의 집으로 찾아가 정중히 사과하고 금일봉을 전하며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바쁜 일을 핑계대며 난감한 자리를 피하는 남편, 시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뒤통수를 갈긴 뒤 사쿠라코와 동행한다. 예를 갖춰 용서를 구하고 돌아오는 길, 시어머니는 딸과 화해했으며 돌아가겠다고 말하며 사쿠라코를 위로해준다. 당황스런 고백에 따귀를 날렸던 사쿠라코는 아들에게 사과하며 '네가 아주 아이는 아닌 것처럼 어른도 미숙한 부분이 많다고'(의미는 이랬고 대사가 좋았는데, 까먹었다.), 그러나 앞으로 너는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고 만다.
자취를 감춘 준을 수소문하던 코헤이는 친구들을 만나 당부한다. 난감함과 적대감이 뒤섞인 테이블, 한때 친구의 남편이었지만 그는 이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찾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준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직선적인 말도 통하지 않는다. 코헤이는 준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고 있고, 여전히 준을 사랑하며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마음이 떠났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준이 온 존재를 통해 말하고 있지만 그는 듣지 못한다. 준은 배를 타고 오사카로 떠났다. 도주를 계획했지만 여자친구가 나타나지 않아 실패한 사쿠라코의 아들이 우연히 배웅자가 되었고, 둘만의 비밀로 삼았다. 준의 채근을 못 이기고 둥근 배에 귀를 대어본 사쿠라코의 아들은, 준 덕분에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다며 고맙다고 말한다.
포르투에서 노세의 낭독회가 열린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관객 중에는 사쿠라코와 코헤이도 있다. 그들은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건조하게 소설 [수증기]를 낭독하는 노세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작가의 필터를 통해 작품이 된, 네 친구들도 함께했던 온천은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새로운 장소와 의미로 거듭났다. 목발을 짚고 포르투에 온 아카리는 오랜만에 다시 만난 우카이가 반갑다. 우카이는 낭독회 대담자로 섭외되었고 포르투의 상주작가 제안도 받은 터였지만,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둘은 발길을 돌려 자리를 뜬다. 행사 전 후미에게도 던졌지만 무시된 우카이의 한 마디에 짐짓 기대에 찬 아카리, 그러나 그들이 닿은 곳은 시끄러운 클럽이다.
선뜻 함께 나섰지만 우카이의 속내를 알 수 없다. 무신경한 우카이와 섣부르게 행동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지만 불편한 목발과 구겨진 자존심 만큼이나 우카이의 완력도 강력하다. 우카이에 의해 자꾸만 무대로 떠밀리고 춤추는 이들에 의해 공중으로 들어올려지는 아카리는 어딘가 안쓰럽고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클럽에는 알고 보니 우카이의 동생인 워크숍 참여자가 일하고 있고, 그는 그럴 듯한 수사와 의미 부여로 예술가 노릇을 하는 오빠를 무책임하고 텅빈 존재로 여기면서도 친구처럼 지낸다. 우카이의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키스까지 하게 된 아카리, 사라졌다 나타난 우카이와 함께 클럽을 나간다. 규범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공고한 자아의 소유자인 아카리에게 이 시간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행사 중 펑크낸 우카이 때문에 다급해진 타쿠야는 후미에게 대담 진행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인터뷰이로 노세와 만난 적 있는 코헤이가 현장 섭외에 응해 대담에 나서고, 의외로 깊은 이해와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를 나눈다. 노세, 사쿠라코, 코헤이, 타쿠야, 후미가 둘러앉은 조촐한 뒤풀이 자리에는 팽팽한 긴장이 흐른다. 노세와 타쿠야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호감을 감추지 않고, 거취를 알 수 없는 준과 엮인 세 사람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격식을 차리면서도 코헤이는 준을 찾아 그의 말을 직접 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조용히 듣던 노세도 당사자를 대신하는 타자의 말이 갖는 아이러니에 대해 의견을 보태며 분위기는 더욱 난감해진다. 노세를 데려야주어야 한다는 타쿠야의 고집으로 뒤풀이는 파장한다.
집으로 향하는 사쿠라코와 후미는 심란하다. 네 친구 모두 일상의 표피에 가려져 있던 균열과 혼란에 직면했다. 사쿠라코는 워크숍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카자마를 전철역에서 우연히 조우하고, 내렸던 플랫폼에서 다시 전철에 탑승한다. 아내로 엄마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는 동안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자아의 비명이, 뒤늦게 사쿠라코에게 들려왔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귀가한 사쿠라코는 출근을 준비하는 남편에게 자신이 바람을 피웠으며 이혼하자고 담담히 말한다. 언제나 그의 몫이었던 겹겹의 빨래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일상을 지탱하는 풍경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돌아온 사쿠라코의 표정은 담담하지만 결연해보인다.
밤새 먼 길을 걸어 집에 도착한 후미, 집은 텅 비어 있다. 얼마 후 돌아온 타쿠야는 밤새 노세와 함께 있었다고,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고, 노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두 사람이 가장 솔직하게 서로를 마주한 순간이지만,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정을 애써 외면하며 평온한 일상을 지켜왔던 후미에게도 결단의 순간이 왔다. 마지막이라고 직감한 순간 후미는 자신이 그간 느껴왔던 마음을 내보이고 헤어지자고 말한다. 늘 조금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던 타쿠야는 순순히 현관문을 나선다. 그들이 다시 만난 건 얼마 후 병원에서다. 목발을 짚은 아카리와 만난 후미는 입원한 타쿠야의 곁에 있어보기로 한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나 관계와 마음과 사건의 수많은 연쇄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혼돈의 시간이 있다. 요란하게 모든 것을 흩어버리기도 하고 때로 폭풍의 눈처럼 고요히 지나가기도 한다. 아무도 모른 채 혼자만의 안간힘으로 버티게 되는 일도, 어떤 계기로든 알려져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일도 있다. 영화는 네 친구가 통과하는 균열의 시간을 주의 깊게 포착하며, 그들의 세계에 틈입한 우카이를 매개로 삶의 중심과 균형에 대해 환기한다. 그를 시덥잖게 여기는 동생의 평가처럼 우카이는 실제보다 거품과 포장이 많은 알맹이 없는 인물로 보이지만, 탐정을 고용한 코헤이가 준의 쉼터를 연결해준 이로 추정한 사람이 그였다는 점을 수상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싶기도 했다 .
영화의 주인공은 네 친구지만, 그 외의 인물들도 주변 캐릭터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워크숍 참여자 모두의 이름이 불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서도 이야기가 발화되며 짧게라도 서사가 부여된다. 타쿠야와 코헤이, 우카이, 노세는 물론이고 사쿠라코의 가족들과 우카이의 동생, 후배 간호사 유즈키와 의사, 폭포에서 사진을 찍어준 여성 역시 출연 비중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인물로 존재한다. 포커스를 조금 옮긴다면 네 친구들처럼 그들을 알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세계에서 누군가의 의미가 더 크게 부여될 뿐,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친구가 되고 누군가 잊혀지는 것은 모두가 경험하는 상대성이다. 누구에게나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고뇌와 사연이 있고, 누구나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 영화가 지극히 현실의 단면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인지,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것 같은 삶의 당위에 생각이 미쳤다.
네 명의 친구들이 고베에서의 워크숍을 통해 캐스팅된 비전문 배우라는 점이 놀라우면서도, 이 영화와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워크숍 마니아인가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나만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기하기도 했고 정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낯선 타인에 대한 경계가 곧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공동의 목적으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함께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공간 중 하나가 워크숍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무방비상태의 자유로움 속에서 불특정다수의 타인을 접할 때 느끼는 거리감이나 불안 같은 것을, 일정한 형식적 제약이 동반하는 안정감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시공간이기도 하다. 워크숍이나 프로그램이라는 틀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영화 덕분에 조금 다른 측면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러닝타임이 길기도 하지만 정말 많은 대화가 오갔고 공감되고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은 영화였지만, 늘 그렇듯 순간의 감응은 뇌리에 새겨지지 않는다. 말이 곧 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지 않은 화자들에게 고루 말과 기회를 준 덕분에 누군가를 안다는 것 혹은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완벽한 선택으로 완전한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고, 누군가에게 사랑인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증오의 대상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대해서도. 실은 조금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우카이와 코헤이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영화 인생 충격 원탑이었던 [티탄]을 보고 정확히 11분 후에 이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다른 가능성이 없었으니 보았다는 것에 만족해야겠지만 아쉬운 환경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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