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을 배반하는 냉소의 근원에 대해 성찰하는 사람
예민함과 과민함을 구분할 줄 알고 평안함으로 마음을 여는 사람
그리하여 마침내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
이라고, 새해 다짐씩이나 하구선 하루종일 집구석에 있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저런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을 찾기보다 스스로를 깊숙히 들여다보는 일을 먼저 해야할 것이다. 실은 나도 안다, 내가 사람을 싫어한다는 걸. 처음부터 그런 건 분명 아니었던 것 같고, 대략 삼십 대 이후를 살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스타일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유난스레 사람을 좋아하던 마음이 조금씩 다치고 상처를 입으면서 나도 모르게 생긴 보호막은 아닌가 싶다. 그러다보니 사람보다는 마음 준 다른 것들에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오늘 나는 이렇게나 많은 짐꾸러미들을 짊어지고 살고 있는 것이겠지.
하여, 오늘은 짐정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썼던 일기장은 물론이요, 깃털처럼 많은 날들 내가 보고 듣고 읽었던, 좋아하고 감동하고 기억하고 싶었던 그 많은 것들의 흔적들. 일단 눈에 띄는 대로 이전 단체 활동하면서 모아뒀던 자료들과 다이어리들, 이주판 떠나는 마당에 그 많은 물건들을 다 부여안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꽤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다보니 어느새 상자 하나 분량의 버릴 것들이 모아졌다. 물론 그 와중에도 한 권의 다이어리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챙겨두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물건도 물건이려니와 더 중요한 건 상자라는 점. 족히 십 여 개는 되는 정리상자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보니 오히려 물건은 더 늘어나고 말았던 것 같다. 해서 오늘은 아예 정리함 하나를 쓰레기통 삼아 버릴 것들을 눈 질끈 감고 던져넣었는데 이게 상당히 유효한 방법인 듯 하다. 상자를 좋아하고 가방을 좋아하는 성향이, 미련 맞은 집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뻔히 알기에 차마 집착의 그릇을 없애는 용기까지는 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사까지는 대략 한 달 반 정도가 남았으니, 그 동안 현명한 짐정리를 완수해야 겠다. 레드까페도 좋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차고 넘친다. 마침 대학로의 '이층' 술집이 내가 꿈꾸던 공간에 심히 가까우니, 거기에서 빛날 것 같은 것들은 챙겨서 갖다드리고, 언제가 될 지 아니 되기는 될 지 알 수 없는 '레드까페'를 위한 욕심은 당분간 접어둬야겠다. 물리적으로 가벼워지지 않으면 심리적으로도 절대 가벼워질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너무 오래 외면했다. 가볍게 그리고 너그럽게.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