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봤던 영화 <망종>에서 여주인공은 쥐와 세 번 마주친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지만,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녀가 나중에는 죽은 쥐를 손으로 치워버렸던가 그랬다. 담은 김치를 자전거에 얹어 팔러 다니며 참 신산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목소리가 영화에서 들렸던가. 분명 주인공인데도 존재감이라곤 없는, 하지만 온통 화면을 채우는 고요한 피사체같은 그녀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었다.
베란다에 잠시 나가느라 방충망을 여니 타임스위치가 켜졌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뭔가 느껴져 돌아보니 벽에 바퀴벌레. 엄지손가락의 반은 족히 넘을 만한 크기의 납작한 바퀴벌레와 잠시 마주보며 서 있었다. 분명 나보다는 그가 더 놀랐을 것이다만... 숨을 고르고 방충망을 조금씩 옮기며 그의 동태를 살피고 찰라처럼 현관 앞의 레이드를 가지고서 다시 방충망으로 가서 그에게 뿌렸다. 차마 직시하지는 못했는데, 마음가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십 초 이상 레이드 버튼을 누르고 용기를 내어 고개를 빼밀고 보니 하얀 벽에 붙었던 검은 생명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방충망을 닫고 베란다로 난 이중문을 닫고 걸쇠까지 잠그고서야 아무 일 없었던 듯. <망종>을 함께 봤던, 독일 유학중이던 친구는 언젠가 그랬다. 집에서 쥐를 잡은 적이 있다고. <망종>의 여주인공처럼인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이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사실 고작 바퀴벌레 따위냐고 할 지 모르지만 아무려나 나는 원래 그래. 라고 단정했던 것들에서 조금씩 해제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11월 말, 실업자로 석 달. 사실 아무 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아마 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할 것이다. 설령 직업으로 자아실현, 노동으로 삶의 가치를 찾는 시대의 한 복판이었더래도 그럴 수만 있다면 그냥 집구석에서 빈둥대며 있는 듯 없는 듯, 의욕 상실 자존감 제로의 반증이라고 누군가 비난하더라도 어쩔건데 하며 버티고 싶은. 하지만 무시로 통장의 잔고와 실업급여, 받아야 하지만 불안한 체불, 넉 달 후의 이사 따위가 떠올라 이따금 마음이 복잡하고, 그럼에도 실은 내가 상당히 상팔자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으니 어찌됐건 몸을 움직이기는 해야할 것이다.
일이건 사람이건 번지없는 로맨스만 좇으며 지내온 날들의 관성이, 실업의 날들이래서 달라질 리 없고.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면서도 마음 한 켠은 자꾸만 어딘가로 달리고 싶고. 빈둥대며 보내는 먼지같은 시간들이 쌓여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는 걸 체감하며, 12월을 맞는다. 잔뜩 꼬여있는 마음과 관계와 그런 것들, 문득 돌아보니 하다못해 어디 꿈스러운 것 하나도 챙기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는 걸 실감하며, 12월을 맞는다. 비밀같은 바람, 너무 오래 툭 던져버렸던. 지금 주워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