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일지2022. 11. 10. 17:55

1/3

 

 

아침에 일어나니 오랜만에 날씨가 흐렸다. 덕분에 푹 꺼져 있던 한 달 가까이, 날씨는 참 좋았다는 게 떠올라 새삼 고마워졌다. 하늘마저 흐리고 내려앉았다면 하루하루 지내는 게 몇 배로 힘들게 느껴졌을 것 같다. 모레로 다가온 토요일 간만의 비 예보가 유효한 것 같은데, 혹시나 잠시 스쳐가는 기대를 접어두려고 마음을 다스렸다. 어쨌든 시간은 차곡차곡 흐르고 벌써 11월의 3분의 1이 갔으니까, 쓸데없는 행운을 바라고 실망하는 일은 없는 게 낫겠다.

 

화요일에는 정형외과를 마지막으로 다녀왔고, 아파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에 문틀철봉을 주문했다. 같은 증상을 겪었고 거의 두 달 만에 10초 매달리기가 가능해졌다는, 운동을 해야 재발하지 않는다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불신할 이유는 없으므로 철봉이 도착하면 팔자에 없는 매달리기를 시도할 생각이다. 3주 동안 병원에 다닌 결과 어깨 통증은 많이 나아졌지만 기본값이 달라진 걸 확인했으니 달고 살지 않으려면 도리가 없다.

 

개기월식이 있었던 날, 현관문 앞 복도에서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 셋을 마주쳤다. "이번에 지나가면 3년 있어야 된대"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나랑 마주치자 깜짝 놀라더니 그중 한 명이 인사를 했다. 통영에서는 신기하게 초등학생이든 중고생이든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곧잘 하는데, 서울에서는 겪은 기억이 없는 일이다. 문 닫고 들어왔다가, 백팩을 앞으로 메고 옹기종기 모여 떠드는 모습이 귀여워서 소포장된 젤리 몇 개를 챙겨 건넸더니 무척 좋아했다. 목요일인 현재까지, 이번 주 가장 마음이 환해졌던 순간이다.

 

오늘은 파티션 난로를 챙겨서 출근했다. 작은 방에 책상이 있던 시절, 복도의 외풍을 바로 맞는 벽으로 전해지는 냉기 때문에 사서 잘 썼었는데 공간에서도 당분간은 요긴하게 사용할 것 같다. 먼지 낀 방충망이 먼저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작은 방 창문 앞에 붙여둔 책상에 앉아 이따금 바다를 흘깃거리며 이것저것 많이 끄적였었다. 핑계일 뿐이지만 집에서 좀처럼 노트북을 켜지 않게 되는 게 의도치 않게 제자리를 잃은 책상 때문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작은 방 창문 너머의 바다를 보면서 뭔가 할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마감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욕  (0) 2022.11.12
일희일비  (0) 2022.11.11
부작용  (0) 2022.11.07
무리  (0) 2022.11.05
  (0) 2022.11.04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