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키운팔할2005. 7. 11. 04:00

 

1991년, 2005년의 7월을 상상하는 것이 가당치도 않았을 한참 전이다. 1991년 11월에 나온 그의 첫 음반. 지금은 분홍머리를 휘날리며 입담 좋은 유쾌한 가수, 선행을 일삼는 착한 가수, 노래는 못하지만 열심히 하는 가수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그의 15년 전. 벌써 15년 전이다. 엄연한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나의 삶을 채우고 나를 키워주었던 것은 영화, 연극, 책이 2할 정도? 그리고 나머지 8할은 온통 노래였던 시절이었다. 노래는 지금도 여전히 내 주변을 흐르고 있지만, 그때만큼의 열정은 한참 멀어진 지 오래.
 

1990년 11월 1일은, 내가 최초로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날이었다. 아직도 11월 1일이 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 김현식. 그리고 1년이 지나면서 세상은 그 절절함이 무색하리만큼 흔하게 '내 사랑 내 곁에'로 가득 찼고, 와중에 김현식의 사촌동생이라는 탐탁지 않은 타이틀을 달고 그가 나타났다. 91년 12월 24일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나는 그를 처음 보았다. 여행스케치의 공연에 게스트로 나온 그는, 대략 이태원제 쯤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점퍼가 무색하리만치 외롭고 쓸쓸한 표정에 훤칠하게 큰 키, 깡마른 몸을 하고 기타 한 대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부른 노래는 김현식 아저씨의 '당신의 모습'이었다. 어찌나 쓸쓸하고 황량하던지, 울컥 눈물이 다 날 뻔 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첫 번째 음반은, 당시 꽤 잘 나가던 서울음반에서 나왔고 노래를 만들고 연주를 해준 뮤지션들도 언더(당시만 해도 이 '언더그라운드'라는 개념은 '진짜 음악'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었다고 생각된다.)를 주름 잡는 조동익, 박성식, 함춘호, 손진태, 장기호, 배수연 등 아주 쟁쟁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무명의 유희열과 조규찬, 조금 알려지기 시작했던 김현철이 함께 했고 고독과 반항심이 뚝뚝 묻어나오는 쟈켓은 김중만씨의 작품이었다.
 

1991년 8월 14일의 일기. 어렸을 때 몇년인가를 병원에서 보냈다. 혼자 쳐박혀서만 있어서 그런지 애가 이상해져서 친구가 없었다. 어렸을 때 되게 심심하고 외로왔다. 20년쯤 지나니까 가수 비슷하게 되있었다. 요즘은 매일밤 그 20년을 생각해보는데, 뭐 좀 되고나서 돌아보니까 재미있다. 너무 많은 아픔과 방황의 시간이었지만, 모든 일들을 항상 소리로 풀어왔다. 노래가 너무 하고 싶었다. 노래를 너무 못해서 이런 날들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근데 되드라구...." 앞으로가 중요한 것 같다. 괴로웠던 날들을 잊지 않고 소리만 지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려야겠다. 너무나 작고 약한 나에게 이런 기적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린다. ...... 내가 노래를 한다고 할때 웃었던 많은 사람들... 어디선가 내 노래를 듣겠지?
 

쟈켓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집에 수록된 그의 노래들은 대체로 꽤나 우울하고 강렬하다. 전체 프로듀싱을 한 '어떤날' 조동익의 단아하고 정갈한 편곡 안에 무너져내린 것 같은 외로운 저음과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샤우팅이 함께 있다. '늘 우리 사이엔'이나 '그곳에' 같은 노래들은 솔직히 대중성은 없지만, 즈음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천편일률적인 대중가요들과는 차원이 다른 일종의 우아함 같은 것이 녹아있다. 물론 무겁고 우울하기는 하지만.
 

이 음반에서 내가 특히 좋아했던 노래는 '햇빛 비추는 날'과 '그 날'이었다. '햇빛 비추는 날'은 그 전해에 '달빛의 노래'로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대상을 받았던, 소시적부터 아저씨와는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던 유희열의 깔끔한 소품이다. 이후 '토이'에서 보여줬던 약간은 내성적이고 소녀적인 느낌이 아저씨의 샤우팅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묻어난다. '그 날'은 어떤날의 음반에서 조동익이 직접 부르기도 했던 노래다. 나약한 목소리의 읊조림으로 각인되었던 '그 날'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리만치 절규가 압권이다.
 

그리고 음반을 낸 다음 해인 1992년 2월 29일, 지금은 없어진 이태원의 비바아트홀에서 데뷔공연이 있었다. 매우 짜여진, 그야말로 음반발매 기념 데뷔공연이었다. 여행스케치 공연에서 봤을 때만큼 우울하고 황폐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위에 적은 일기에서 느껴지는 오랜 기다림 끝의 시작 치고는 그는 여전히 긴장해 있었고 세상을 향한 독기를 잔뜩 품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의 공연을 다 봐야겠다는 이상한 욕망으로 1,2회를 다 보고... 물론 알게 된 이후부터 무언가 내가 사로잡혀버렸다는 느낌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인생의 어떤 분기점을 만난 예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김장훈을 김장훈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내게는 무척이나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다. 내게 그는 단 하나뿐인 '아저씨'다. 세상에 무수한 아저씨가 있고 무수한 가수가 있고 무수한 연예인이 있고, 15년 전의 그때로부터 차곡차곡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서른두살의 어엿한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변한 건 없다. 이제는 아저씨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김장훈 1집 
로엔 / 199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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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