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2012. 4. 29. 22:46

 

모처럼 집을 지킨 주말, 지난 주말의 강행군과 이번 주 내내 늦은 귀가, 와중에 사무실에서의 피로한 시간들에 지친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청소도 빨래도, 어느덧 완연히 봄 기운을 풍기는 계절에 맞는 옷들도 좀 챙겨가며 생활을 단정히 하고 싶었다. 

세상은 온통 투쟁- 자주 트위터와 페북을 들여다보며 대한문에, 전주에, 강정에 또 어디에.. 마음이 가고 미안했지만, 나 하나 집에 있다고 달라질 게 뭐 있나 부채감을 달래며. 실은 당면한 내 투쟁이 아니니 이렇게 홀가분하게(?)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싶은, 자주 느끼는 그 '거리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하지만 투쟁의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아쉬운 얼굴 떠올리며 나를 떠올릴 일은 없으니, 그렇게 부유하는 존재감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했다. 

며칠 사이, 사는 게 어쩜 이렇게 외로울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대체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뭐 그런... 늘 하던 생각을 좀 더 간절히 하면서... 정말 뻔뻔하게도 차라리 적들과 대결하는 큰 싸움의 당사자로 거리에 있는 분들은 이런 사소하고도 극진한 외로움으로부터는 좀 놓여나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다. 무겁기로 또 힘들기로 치면 그야말로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그들을 감히 댈 게 아니겠지만... 어쩌면 더 어렵고 힘든 것은 '함께'하는 이들 사이의 문제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경향적으로 볼 때 사실, 낯 모르는 사람들이 대의 아래 마음을 모으기는 얼마나 쉬운가, 더구나 그것이 당장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남의 일'일 때 말이다. 정말 어려운 일은 이리저리 엮여 있는 상태에서 서로를 낱낱이 겪으면서도 흔쾌히 마음이 통하는 것 그리고 그 마음들이 한 데 모이는 것. 내가 워낙 사소한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인 탓도 있겠지만... 사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유쾌하게 마음이 통하는 상황, 그게 정말 살 만한 삶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언제 그런 때가 있었나 돌아보면... 없지 않았고 선명히 떠오르는 고마운 얼굴도 있으나 참으로 어리석은 것은, 그 아름다운 시절 한 중간을 지날 때는 소중함을 잘 몰랐다는 것.

몇 년 전에 한 친구가, 너무 외로워서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을 지경이라고 하는 말에 웃었던 적이 있는데... 실은 요즘 내가 딱 그 심정이다. 물론 이런 병증에 가까운 외로움의 이유는, 자꾸만 생각나는 누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날이 느끼지만... 마음의 균형이란 참 어렵다. 사는 동안 내내 이럴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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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