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간에 왔던 S가 화장실에 갔다가 열쇠를 들고 갔다. 집에 가면서 은연중 열쇠를 받았던가 생각했고 출근해서 확인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밤에 전화가 왔다. S가 함께 있는 이들 중 얼마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 나눈 분이 떠올라서 그를 통해 우편함에 넣든지 내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구름 보러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우리집 앞에서 그분과 마주쳐 열쇠를 받았다. 잠깐이었지만 지난 번 어색하게 통성명하며 인사할 때와는 한결 달라진 느낌, 덕분에 아침부터 이웃을 느꼈다.
화요일엔 벤도 사장님도 만나지 못해서 어제 이틀치 주차비를 드렸다. 어제의 벤은 더위를 먹었는지 담벼락과 컨테이너 사이에 엎드린 채 나오지 않았고 사장님도 두어 번 부르다 마셨는데, 어제와 다름없는 날씨여선지 오늘의 벤도 마찬가지 상태였다. 오늘 사장님은 아예 벤을 변호하듯 말씀하셨는데 나는 벤이 주차비 받는 건 관심없고, 잔뜩 지쳐 엎드려 있으면서도 인사 건네니 잠시나마 웃는 표정을 지어 주는 게 고마웠다. 한 달 넘게 거의 개근한 결과 내 차가 주차장의 최고 단골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그 덕인지 사장님이 텃밭의 상추를 나눠주겠다고 하셨다. 퇴근길엔 마주칠 때도 아닐 때도 있으니 차 옆에 두시겠다고 했는데 뭔가 이웃이 확장되는 느낌이다.
어제 깜빡했는데 오후에 중년여성 두 분이 공간에 잠시 들어오셔서 이야기를 나눴다. 7월에는 종종 있었지만 8월에는 뜸해진 대화, 더 인상적인 것은 그분들과 잠시 이야기하는 사이 시야에 들어온 창 밖 대각선 맞은 편 벤치에 앉아 계시던 세 어르신들의 이 쪽을 향한 고개와 시선이었다. 약간 미어캣 같은 느낌이었는데, 대체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리와 공간이다 보니 아주 작은 변화의 순간에도 집중하게 되는 모양이다.
오늘은 오늘의 목표량만큼 일을 하고 책을 읽었다. 일요일이 책 모임이어서 미리 읽으면 까먹으니까 오늘 시작했는데 분량이 얼마 안 되어 절반 넘게 읽었고 생각보다 재미있다. 부득이하게 내가 추천한 꼴이 되어 꼼꼼하게 읽고 가급적 정리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연작 에세이의 첫 책이니 그다음 책도 내일부터 읽을까 싶다. 오늘 공간에서는 일과 독서가 조화로운 하루를 보낸 것 같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하면서 금요일이면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는 기분이 드는 터라 살짝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