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2013. 8. 7. 01:38




얼마 전 김병욱 피디가 새로운 "하이킥" 시리즈를 준비한다는 기사를 봤다. 부천에 살 때, 같이 일하던 샘이 막 시작된 "지붕뚫고하이킥"에 대해 하도 상찬이기에 마음 먹고 함 봤다가... 청소를 하다 지쳐 잠시 방바닥에서 잠든 세경과, 그 모습을 연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지훈이 세경이 베고 자던 자기의 전공서적을 망설임없이 툭- 빼내는 장면에서 급,은혜를 받은 후로 혼자서 아주 열광을 하며 봤었다. 서대문으로 이사한 뒤 유선 연결까진 하고 싶지 않아 보름쯤 무티비로 지내면서 오직 하나 "지붕뚫고하이킥"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일상의 큰 빈 틈이었는데... 가족들이 놀러온 일요일 낮, 안테나선을 찾아꽂은 오빠의 간단 시술 후 재방송 중인 "지붕뚫고하이킥"을 만났을 때의 행복감이 여전히 선연한 수준에, 지금도 가끔 오빠네 가면 채널 검색해가며 한참 철지난 재방송이라도 걸릴까 리모컨을 만지작대는 지경.  

참 좋아하고 열심히 봐댔던 건 물론, 마치 내가 자옥네 한옥집 보이지 않는 구석방에 세들어 살고 있기라도 한 듯 정말 희한한 감정이입도 가끔 했었던 터라 여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요즈음 자꾸만 떠오르는 장면은 자옥과 격의없이 지내는 줄리엔을 질투해 하릴없이 트집을 잡고 구박을 하다가 업무차 신세를 지게 되자 사과하고 화해를 청했던 순재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에 보였던 반응이다. 이성과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취중에 자신을 부축하는 줄리엔의 팔목에 채워진 자옥이 선물한 시계가 시야에 들어오면 치솟는 질투심에 불같이 화를 내고 옷자락에 시계가 가려져 보이지 않으면 낯을 바꿔 웃음을 보였던가 뭐 그런 우스운 반복.

물론 다분히 과장된 리액션이고 적당히 선을 지켜가며 서로를 대하는 현실에서는 목격하기 어려운 일이다. 안전한 거리와 예의로 중화되고 정돈된 관계 이면의 신랄한 감정선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들과 에피소드들이, 그래서 더 인상적으로 오래 기억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즉각적으로 시선에 잡히는 대상에 따라 급격한 기복을 보이는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기분 탓이겠지만, "질투는 나의 힘" 대신에 "좋아요가 싫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날. 줄리엔의 팔목시계도, 누군가의 "좋아요"도 결국 그저 현.혹.임을 알고 있다. 아무려나 오늘 저녁엔, 마음길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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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