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7. 11. 13. 00:06


그토록 화제가 됐던 책을 이제 읽었다. 페미니스트라 자칭할 수 없는 의식을 가진 여성인 내게, 트윗 타임라인으로 전해지는 코멘트들은 때로 거부감을 일게 했고 버젓한 '여혐'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그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기에는 무언가 마뜩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읽어보는 게 좋겠다 생각한 계기는 ㅇㅁㅇ, 그와 오랜만에 싸움-이야기를 하는 동안 한 달음에 읽어버렸다.

여성이 처한 한국사회에서의 운명(?)의 보편성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이야기 속에는 물론 내가겼은 경험도 상당히 투영되어 있다. 어린 시절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나와 오빠를 키워준 친할머니로부터 나는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지독히 차별을 당했고, 그때 겪었던 억울함과 느꼈던 반항심은 어른이 된 지금의 내 성격의 원형질을 구성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지영 씨나 또래의 여성들만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미처 경험하지 못했을 사회적 차별을 피해간 건 사실이고, 김지영 씨나 아직은 반 이상이 거쳐가는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들도 분명하다. 그러나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거나 무신경하게 넘겼던 '보편적 여성'이 당하는 '보편적 차별'을 조금은 절박하게 인식하게 되기는 했다.

그런데 한편,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와 관련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한 편의 소설이 모든 맥락을 포함할 순 없다는 것은 알지만.. 소위 '정상가정'으로 분류되는 부모님이 살아계신 집안에서 성장해 자연스럽게 대학에 진학하고 어렵사리나마 사무직노동자로 살아가는 동시대의 여성의 경험 속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성별불평등이라는 문제는, (부모님의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대학이라는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생산직노동자로 일하는 것이 누군가(주로 남성)들에게는 거의 소구력이 없는 '남의 세상'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 조금만 길어져도 싸움이 되는 ㅇㅁㅇ와의 관계의 난항으로부터,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만한 텍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의 특별함 독후감이다.

페미니즘은 나 역시 언감생심, 그저 기본적으로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 정도를 바라는 수준에서도 어렵기만 한 이 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다. 마음이 무겁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2016.10.14 1판1쇄 2017.9.29 1판36쇄, (주)민음사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