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읽어낸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원효길은 없다", 시작부터 왜 '우리'에게는 산티아고길이 없는가 운운하더니.. 원효길을 국토대장정의 길로 재구성했다느니, 원효랑 이무 상관없는 농촌마을들을 소개하면서는 웰빙체험이니 그린로드니 말이 길었고, 역사유적을 소개하면서는 억지스럽게 연결 지어 의미 부여를 하는 통에 민망했다. 농촌마을이나 역사유적 소개가 의미 없는 것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에 떡하니 원효를 붙여놓고 할 일은 아니다.
얼마 없는 사료라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원효의 흔적이 남은 현주소를 찾아가는 성실한 기행에세이를 기대했는데, 구체적인 내용도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도 나와는 영 맞지 않았다. 그래도 관련된 사찰 정보라도 챙겨볼 셈으로 체크해가며 읽기는 했고, 나처럼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눈여겨볼 정보가 물론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전조사도 취재도 분명 쉬운 과정은 아니었을 텐데.. 불교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깊이도 없고 통찰도 없는 얕은 관점과 기술이 일관되어 적잖이 당황스러웠디. 유적의 가치를 논하는 기준은 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여부이고, 아쉬운 점은 거의 대중성과 상품성을 계발하지 않는 지자체와 행정의 무관심이고, 자부심의 발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니 고은 시인이니 하는 유명인의 행차와 거주 사실 정도를 꼽는.. 물론 내내 그렇지야 않았겠지만 책장을 넘기며 쌓인 거부감은 결국 이런 정도의 부정적인 단상을 남겼다.
그렇게 막판까지 와서 진정으로 빵 터진, 대목은 '효'에 관한 용주사 주지의 인터뷰였는데.. 생각해보니 나름 가르침이라고 그런 말을 하고 그걸 또 큰따옴표에 담아 그대로 옮기고, 이 정도의 글에 불교계는 상을 주고. 이게 바로 지금의 현실이구나 싶기도 했다. 어렵겠거니 지레 짐작하고 쉬운 길을 택한 나의 잘못이려니, 고영섭 교수의 <분황 원효>를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전상천•조형기
2012.4.20초판1쇄인쇄 4.27발행
형설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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