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1. 1. 30. 00:32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통로 같은 휑한 공간에 놓인 책상 하나, 그 위에는 작은 스탠드와 간단한 문구류가 꽂힌 연필꽂이와 한 쌍의 헝겊인형이 놓여 있다. 이어 해 지는 풍경을 뒤로 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승용차 한 대, 앞좌석 차창 앞에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헝겊인형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운전자는 박정은 대리, 권고사직에 대기발령을 버티던 원청에서 파견된 군산의 하청업체로 가는 중이다. 팩소주를 주스처럼 빨아마시며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원룸은 정은이 버티던 책상처럼 휑하다.


다음 날 산 속의 임시건물 같은 하청업체로 출근한 정은, 송전탑을 관리하는 그곳은 소장과 세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작고 초라한 현장 사무실이다. 정은이 온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소장은 하청업체로의 파견이 의미하는 바를 강조하며 떠나기를 종용하지만, 떠날 수도 없고 떠날 데도 없는 정은은 어거지로 자신의 책상을 마련하고 버티기 시작한다. 퇴근길 안주도 없이 두 개의 팩소주를 사들고 들어가는 원룸에는 매트리스도 없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으며 매일을 버티는 정은은 1년간의 고단하고 긴 싸움을 위해 창문에 빨간 매직으로 1부터 365까지 숫자를 써내려간다.  


숫자 위의 X표를 하나씩 늘려가면서 일을 주지 않는 하청업체에 출퇴근하며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작업자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은은 자원해 현장에 나간다. 남몰래 사무실에 남아 업무를 책으로 익혔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송전탑 앞에서 정은은 한 발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린다. 찾아간 병원에서는 특정대상물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정은은 약을 먹어가며 상황을 이겨내기로 한다. 


정은이 퇴근길 소주를 사는 편의점에는 하청업체 동료인 막내씨가 알바를 하고 있다. 쉬는 시간에는 어디서고 쪽잠을 자는 막내씨는 철탑일 외에도 여러 알바를 하며 딸들을 부양한다. 사무실에서도 편의점에서도 데면데면하지만, 막내씨는 매일 안주 없이 소주를 사는 정은의 봉지에 안주거리를 슬쩍 집어넣기도 하고 멋모르고 현장일에 덤벼드는 정은에게 방전작업복 구입처를 메모해주기도 한다. 근무평가며 인원 감축이 회자되는 좋지 않은 분위기에, 막내다 보니 한 조가 된 현장에서 실상 일은 자신이 다하면서도 정은을 무시하거나 타박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독하고 길게 버티는 정은은 원청의 눈엣가시다. 안 그래도 갑질에 버거운 하청업체에는 구조조정 압박에 평가단 방문까지 예정되어 있다. 평가단의 타겟은 누가 봐도 정은, 현장에 몇 번 나가봤지만 무거운 부품들을 체결하고 옮기고 송전탑에 올라야 하는 평가는 정은에게 너무나 불리하다. 송전탑 앞에 굳어버린 정은에게 막내씨가 다가가 도움을 주려 하지만 소용 없고, 평가관과 원청 직원은 효율성 타령에 성희롱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정은을 모욕한다. 정은은 고용노동부를 찾아가 상담하지만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시정명령이 내려진대도, 회사가 시간 끌고 소송으로 가면 3년 5년도 걸린다는 말에 선뜻 제소를 할 수도 없다.

정은의 절박한 모습을 본 막내씨는 거절했던 알바를 하자고 먼저 제안한다. 둘은 쉬는 날 전기교육원에서 현장 업무를 알려주고 배운다. 두려움 속에 철탑에 오르고 현장 업무를 배우며 정은의 상처 받고 얼어붙은 마음이 아주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도움이나 배려에 대한 고마움보다 자신의 절실함이 더 큰 건 여전하지만, 형식적이고 불합리한 한 달간의 평가를 함께 겪으며 아무 상관없이 지내던 동료들과도 약간의 유대감이 형성되는 중이다. 

네 명이 함께 수리를 나간 날,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는 평가관은 무전으로 갖은 간섭과 잔소리를 하고 세 명의 동료가 송전탑이 오른 뒤 정은은 아래에서 부품을 올릴 준비를 한다. 잡담을 나누며 일하던 송전탑 위의 말이 끊기고, 눈 깜짝할 사이 정은의 뒤로 뭔가 툭 떨어진다. 막내씨다.

일반 사람들은 못 보는 풍경을 매일 볼 수 있어 이 일이 좋다던, 철탑 사람들은 감전에 한 번 추락에 한 번 죽는다던 막내씨가 그렇게 까맣게 타서 떨어졌다. 동료들은 일을 나갈 때면 의식처럼 한손을 모으고 "우리는 생명, 우리는 빛, 안전제일"이라고 힘없는 파이팅을 중얼거렸다. 하청업체 건물에 붙어 있는 "우리는 생명, 우리는 빛"이라는 문구는 시간이 갈수록 너덜해졌다. 순식간에 한 사람의 생명의 빛이 꺼졌다.


시체가 되어 안치실에 누운 막내씨와 그의 어린 세 딸들을 마주하고, 사건의 조용한 수습에만 급급한 평가단과 원청 직원들을 목격한 정은은 분노와 충격에 휩싸인다. 소장과 동료들은 장례식장 앞에서 어쩔 줄 모를 뿐이다. 한때 동료였지만 휑한 책상에서 버티는 정은을 모욕하고 하청업체에서도 버티는 정은을 또 모욕했던 원청 인사과 직원은 이제 죽은 막내씨를 모욕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큰 딸을 데리고 합의서 서명을 유도하는 그는, 자신만 모른 채 모든 노동과 생명을 모욕하는 중이다. 격한 감정을 누르며 정은이 나서지만 되돌아오는 건 욕설과 폭력 뿐이다. "당신들이 죽게 했잖아, 살게만 해달라고..." 기진맥진한 정은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텅 빈 장례식장 벽에 쭈그리고 앉은 정은에게 소장의 전화가 걸려온다. 송전탑 고장으로 섬마을에 전기가 끊겼다. 장례식장까지 전기를 공급하는 라인이기도 해, 장례식장 어딘가에서 시체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떨치고 일어난 정은은 홀로 고장난 송전탑에 오르고 수리를 하기 위해 줄을 탄다. 지켜보는 것만도 아득한 바다 위 송전선, 위태롭게 공중에 매달린 정은의 일은 정은이 내몰린 현실과 꼭 닮았다. 안간힘을 쓰며 수리를 마치자 전기가 연결된다. 섬마을에 드문드문 불이 밝혀진다. 안치실의 막내씨에게도 전기가 닿을 것이다.


고소공포에 특정대상물공포가 결합될 만큼, 송전탑은 정은을 무력하게 만드는 대상이다. 고아라서, 여성이라서, 학벌이 없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만들었던 현실의 벽은 송전탑보다 더 높고 잔인했다. 영화에서는 정은은 물론 먼저 찍혀 버티다 사라진 선영 선배나 유일하게 정은을 찾아오던 동료 혜숙의 권고사직 사유가 드러나지도 암시되지도 않지만, 혜숙과의 짧은 대화나 정은의 나레이션으로도 관객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송전탑까지 타야 하는 건 극단적인 경우라고만 말할 수 없을 만큼, 차별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은이 송전탑까지 타야 했던 건 영화여서가 아니라, 부당한 처사를 순순히 받아들이거나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은은 전혀 반사회적이거나 반조직적인 인물이 아니다. 선을 넘는 일 없이 조직문화에 적응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던 인물이다. 동료의 주검 앞의 부당한 처사에 폭발한 상황에서도 "보고 드립니다"라며 제대로 된 절차를 밟을 것을 항의하고, 문서로 보고하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에는 조의금 봉투에 '경위보고서'를 적어 내민다. 이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사회와 조직이 정한 대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다했지만 그녀가 내몰린 곳은 생존의 벼랑이다. 

자신을 불편해하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배우고 버티며 모멸감을 홀로 감내하는 정은은 표정의 변화 외에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절친한 동료 혜숙과의 만남에서도 넋두리 대신 씁쓸한 웃음 정도를 보일 뿐이다. 한 번 바닥을 보이면 무너져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마지막 나레이션처럼 세상에 나오기 전에 부모에게 해고 당하고 죽도록 공부해서 코피 흘려가며 일했던 직장에서 해고 당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스스로 강해지는 것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정은만이 아니라 주요 인물 누구도 감정을 토로하는 일이 없다. 영화는 건조하고 덤덤하게 인물과 상황을 응시한다. 구구절절 말하고 자극적인 연출을 더하는 대신 인물을 압도하는 송전탑, 가늘고 불안하게 이어진 송전선, 시원하지만 막막한 바다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정은이 겪는 공포나 좌절은 거대한 괴물처럼 눈앞에 선 송전탑의 클로즈업으로, 막내씨가 추락하는 비극의 순간은 극적 효과 없이 고요하게 처리된다. 감정을 고조시키거나 관객보다 먼저 흥분하지 않는 덕에, 내내 함께 긴장하며 볼 수 있었고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정은의 삶은 지독한 투쟁이고, 불공정한 경쟁과 구조적 차별이 공고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다수가 내면화한 결과다.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과 문제가 정은의 삶과 일터로 집약되어 펼쳐진다. 정은은 다중의 소수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감정을 내보이며 좌절하지 않는 그녀처럼 영화도 섣부르게 감정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은 현실이고, 어떤 희망의 기대도 없다. 다만, 정은이 떨어진 그곳에 무덤덤하지만 인간적인 도움을 주는 막내씨와 불편해하면서도 조금씩 변화하는 동료들이 있었을 뿐이다. 앞으로 정은은 어떻게 살게 될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용기로, 고립된 섬마을과 죽은 막내씨의 시체에 빛과 온기를 보냈지만 그녀가 말한 지옥의 외줄타기가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회에서 봤어서 또 볼까 말까 하다가 할인쿠폰 덕분에 한 번 더 봤는데, 몇 달이 지나서 다시 보니 대략의 전개와 결말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우연히 오정세, 유다인 배우가 출연한 <박하선의 씨네타운>을 들었는데, 좀은 정말 막내씨 같고 정은 같은 두 배우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더 높아진 느낌도 들었다. 

한 가지 궁금했던 건, 원제의 주요 제목이었고 영화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파견'이라는 단어가 왜 빠졌을까 하는 것. '파견'은 간접고용과 중간착취를 금지한 근로기준법의 원칙을 깨고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아주 나쁜 고용형태다. 수십 년이 지나며 간접고용이 너무나 많아지고 가치중립적인 하나의 고용형태인 것처럼 현장에 자리잡았지만, 파견은 여전히 원청의 사용자 책임과 노동자의 권리를 무력화시키는 반노동적이고 반인권적인 제도다. 영화는 노동의 언어나 제도의 언어를 크게 부각시키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지만, 제목에서 빠진 건 많이 아쉬운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웠던 것. 롯데시네마통영에서 본 11번째 영화였는데, 처음으로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기 전에 영사가 멈췄다. 나 말고도 3명의 관객이 더 있었고, 엔딩크레딧이 나오는 중 그들이 자리를 떠서 객석이 비었는 줄 알고 그랬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영화의 여운이 딱 끊겨서 순간 당황했다. 사고인가 싶어 잠시 기다렸지만 이어지지 않아 나오다가 청소하러 들어온 직원에게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중요한 거니까 다시 한 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주세요.


1/29, 롯데시네마통영3

 

 

 

'빛의걸음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어웰]  (0) 2021.02.04
[해피 투게더]  (0) 2021.02.04
[세자매]  (0) 2021.01.30
[어바웃 타임]  (0) 2021.01.28
[파힘]  (0) 2021.01.28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