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1. 2. 7. 15:14

 

경험은 별로 없지만 책 모임이 궁금했다. 25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이라 금세 읽었는데, 책을 읽으며 느끼는 양가감정의 진폭이 컸다. 판형과 표지의 색감은 가볍고 발랄하지만, '15년간 이어온 책 모임 현장의 생생한 기록'라는 뒤표지 카피에 기대가 생겼다. 책 모임이란 늘 존재했겠지만, 15년이나 계속해온 사람이라면 그 내공이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생각지 않게 나 자신에 대해 많이 돌아보게 만든 책이다.

초반부에는 읽으면서 내내 당황스러웠다. 기자 생활을 하며 얉고 빠른 글쓰기에 익숙해졌고 깊이 있게 책을 읽고 싶어 책 모임을 한다는 저자의 글에서는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은 가독성을 높이기보다 엉성한 번역서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책 모임을 잘 이끌어온 자기만의 비결은 빼고 쓰느라 일부러 알맹이를 감춰둔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책에 굳이 별점을 매기는 방식에 공감이 되지 않았고, 책 모임에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평이하게 느껴졌지만 저자는 감탄을 연발했다.

프롤로그에서 책 모임과 함께한 자신의 성장기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유사한 패턴의 짧은 글이 이어지고 그 속에는 "난", "나는"으로 시작하는 책 모임 운영자로서의 다짐이나 마음가짐 혹은 책 모임에 대한 사랑이 반복됐다. "나" 만큼이나 반복되는 "미친" "광"이라는 표현에도 조금씩 지쳤다. 책과 영화, 책 모임에 대한 저자의 일상 흥분 상태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거부감이 일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작가의 ‘전작 읽기’ 모임을 꾸렸다거나 진행했다는 이야기도 몇 차례 나왔는데, 실제 목록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포함하지는 않는다고 생각됐다. 너무 쉽게 '전작'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책 내용 전반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이나 '광적' 거품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진다 싶었다. 

언급되는 책 중엔 '깊이 있는' 책도 적지 않았고 존재를 모르던 책들을 알게 되는 반가움도 있었다. 중간에 정리된 논제 중에는 흥미로운 지점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가 자주 언급하는, 내가 기대했던 '깊이'를 마지막까지 느낄 수 없었다. 트렌드가 된 책 모임에 대해 팬시하게 기획된 책이라는 게 솔직한 독후감이다.

전반적인 느낌은 그대로였지만, 에필로그에 가서야 불퉁했던 마음이 좀 나아졌다. 이 책은 5개월간의 책 모임을 기록한 것이었고, 책 못지 않게 책 모임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배우고 변화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발랄한 편집디자인이 필요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면 나았을 뻔 했다.


내 마음 안에는 스스로도 민망한 오만함이 있고, 그런 허황한 자만심을 의식할 때마다 느끼는 괴로움이 있다. 이 책에 대해 위에 쓴 부정적인 소감들이 그 반영일 것이다. 영화와 책을 오래 좋아했지만 내 취향의 경계 안에 머물며 타자에 대한 벽을 높이며 살아 왔다. 듣고 보고 읽는 일이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조금은 성숙해지는 통로가 될 수 있기를 나도 바라지만, 그러지 못했다. 심드렁하게 읽다가 책장을 덮고 나자 많은 생각이 몰려오는 책이었다. 


김민영
2020.9.3.1판1쇄인쇄 9.15.발행, 북바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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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