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1. 2. 3. 16:24

 

지난해 이사하기 전, 마음의 지인 몇을 연락해 만났었다. 그 중 한 사람과의 약속장소였던 서점에 일찍 도착해 책을 구경하다가, 어디선가 들어봤던 이 책이 눈에 들어와 기다리며 앞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미 오래 혼자 사는 중이라 익숙해졌지만, 언젠가는 나도 한 번?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어서 궁금했던 책이다.

세 명의 저자 중 우엉과 부추는 대학교 선후배, 부추와 돌김은 부부 사이다. 이들은 각자 1인가구로 살면서 턱없이 높은 주거비용에 어려움이나 곤란, 불편, 좌절 같은 것을 경험한 공통점이 있다. 두 명의 이성이 결합하는 결혼과 이후 아이 한둘을 낳고 키우는 '정상가족'의 삶에 자신의 미래를 맞출 생각이 없다는 점도 같다. 책에는 부추를 교집합으로 만난 세 사람이 함께 살기로 의기투합해 '느슨한 가족'이 되고, '대출공동체'로서 함께 강화도에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책방시점'을 열기까지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들이 함께 꿈꾼 공동생활의 거점인 집은 북스테이를 겸하는 '책방시점'과 한 공간이고, '시점'은 책을 구성하는 다섯 개의 장 제목에도 알뜰하게 담겨 있다('각자의 시점, 우리가 함께 살 시점, 우리만의 집을 지을 시점, 슬기로운 동반 생활을 고민할 시점, 지속가능한 삶을 그려갈 시점'). 세 명의 저자가 각각의 시점으로 지나온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데, 공히 강조하는 바 세 사람의 성격은 참 다르지만... 단정하고 부담없이 편하게 읽히는 글투는 꽤 비슷한 느낌이어서 읽다가 자주 한두 쪽 앞으로 돌아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누가 쓴 건지 확인하고는 했다.

가치관이 비슷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셋. 함께라면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공동생활을 결심한 이들은 주변의 공동체를 탐색하고 자신들이 함께할 미래를 공언하며, 너무 높은 현실의 벽 앞에 혹시나 약속이 흔들릴까봐 꾸준히 무언가를 도모하고 시도한다. 운명처럼 만난 강화도의 땅을 빚 내서 매입한 뒤 당장 마련할 길 없는 건축비 때문에 집 짓기를 2년 미루지만, 그 사이 독서모임과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우엉의 집에서 몇 달을 함께 살며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해간다.

책에는 월세나 전세 계약 정도나 해봤던 이들이 대출을 받아 땅을 사고, 맨땅에 헤딩하며 집을 짓고, 어엿하게 '책방시점'을 여는 과정이 꽤 자세히 담겨 있다. 든든한 지인의 도움과 정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번듯한 직장, 셋의 지혜와 추진력 등이 결합한 결과, 기록된 것만도 참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지만 멋진 전원주택이자 북스테이 책방이 탄생한다. 뿌듯함도 어려움도 과장하지 않는 글들이었는데, 읽다 보니 마냥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게 사실이었다.

이들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함께여서 힘든 순간도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성격의 세 사람이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이 늘 즐거울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집을 짓기 전 우엉의 집에서도 집이 완공된 후 강화에서도 세 사람은 때로 어색한 공기 속에 놓이고 며칠씩 말을 섞지 않으며 지내기도 한다. 이럴 거면 왜 함께 살기로 했을까 후회하며 자기 방에만 처박혀 있다가 2주간의 발리여행에서 지난 시간과 서로를 돌이켜보며 미운 마음이 사그라들었다는 우엉의 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세 사람의 관계 밀도는 높고 서로 '우리는 잘 맞는다'는 공감과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지였겠지만, 각자의 서운함을 토로한 글을 보면서 나라면 어떨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지난 연말 3주 동안 누군가와 함께 지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던 사이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한 집에서 지내는 관계가 되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이 달랐다. 넓은 집이었음에도 한 공간에 타인과 함께 있다는 건 혼자 사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서로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 배려하고 신경을 썼지만, 그만큼 피곤해졌고 나만큼이나 집주인도 때로 예민하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 사정 때문에 신세를 지는 것이어서 있는 동안 먹을 거리를 책임졌고, 돌아오는 날은 흔쾌히 받아준 고마움을 담아 얼마간의 생활비를 전했지만 그마저도 적절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고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몇 년 전, 이사 시기를 맞추지 못한 지인이 한 달 동안 우리집에 산 적이 있었다. 내가 내건 조건은 하나, 나한테 잔소리만 안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시원시원하고 활달하고 성격 좋기로 정평이 난 지인의 생활패턴은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고 밤 9시만 되면 졸립다고 잠자리에 드는 식이었다. 함께 지내는 동안 불편함은 거의 없었고 당연히 내게 잔소리를 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누군가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고, 자꾸만 먹을거리를 사서 좁은 냉장고를 채우는 것에 싫은 소리를 한 기억이 있다. 한참 전 일인데도, 내가 반대 입장을 경험하고 보니 새삼 그때의 일이 떠오르며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이들의 함께살기는 종료시점이 예정된 단기간의 동거가 아니기 때문에 물론 완전히 다르다. 아무 이유없이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하고 싶은 삶의 지향이 일치하고 셋이 함께일 때 서로를 보완하며 낼 수 있는 시너지를 확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7년의 약속'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더 큰 힘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 그에 더해 사람일은 모른다는 유연함이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러우면서도 나라면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아직은 모르겠지만... 오래 마음에 담아둘 것 같은 책이었다.


2020.7.1초판1쇄, 900km
우엉 부추 돌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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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