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특수로 경제 발전이 가속화되던 시기라는 정도 말고는 아는 바가 없는 1953년의 일본, 산업 발전이 도시를 팽창시키고 도농간 세대간 격차를 키우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내리사랑을 주고 노년의 공허를 피할 수 없는 부모와 자기 삶을 우선하는 자녀의 모습은 시대와 상황을 막론한 반복인 것 같다. 시골에서 하루 반나절쯤 걸리는 긴 여행으로 동경에 도착한 노부부는 아들네와 딸네를 그야말로 전전한다. 관성인지 천성인지 며느리들만은 진심을 다하는 듯 보이지만, 자식들의 환대는 짧고 건조하다. 반가움도 잠시, 노부부의 모습이 어딘가 처연해보이는데 그들은 내색하기보다는 헛헛한 웃음을 나눈다.
동경에서 성공한 의사 아들 코이치의 상황은 생각보다 고만고만하고 마지막이 될지 모를 부모의 동경 나들이에도 환자 왕진이 먼저일 수밖에 없어 목욕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보고 싶었을 손주들은 데면데면하고 버릇이 없는데, 어렸을 땐 다정했던 장남 코이치나 인정머리 없는 딸 시게에 비하면 양반이다. 8년 전 죽은 아들의 아내, 애매한 며느리인 노리코만이 휴가를 내면서까지 동경 구경을 시켜주고 누추한 집이나마 기꺼이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며 극진하게 노부부를 모신다. 배려인지 방치인지 애매하게 이타미 온천으로 보내진 노부부의 이물감, 흥청망청한 분위기 속에 계속 시끄럽게 흐르던 배경 음악이 실은 오부리밴드의 라이브로 드러나는 순간에는 보는 나까지 난망해 웃음이 났다.
딸네집에서 신세를 지다 모임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한 부부가 낙심도 원망도 없이 "또 떠돌이 신세가 됐구만" 하던 장면은 참 씁쓸했다. 어머니는 결국 노리코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아버지는 동경의 고향 사람들을 만나 밤새 술을 마시고 험담인지 한탄인지 모를 자식들 이야기를 나누다 고주망태가 되어 딸 시게의 미용실에 당도한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공감과 웃음 중 어떤 반응이 더 컸을까. 일생일대의 여행이었을지 모를 동경에서 시골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병이 나고 오사카인가에서 기차를 내려 그곳에 사는 다른 아들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식들을 보러 떠난 먼 여행이 작별 인사였던 듯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코이치와 시게는, 혹시 모를 준비성으로 상복을 준비했고 장례를 치른 후 곧 떠난다. 상복 없이 먼 길을 온 노리코가 노부부와 함께 살던 쿄코와 아버지 곁에 오래 남았다가 동경으로 돌아간다.
예전에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동경 가족]을 보았었고, 후에 [동경 이야기]의 배경을 당대로 바꿔 재해석한 영화였다는 걸 알았다. 서울에 있을 때 이따금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 소식을 들었지만 딱히 궁금하지 않아 부러 찾지는 않았었는데, 전설이 된 명작의 함정인지 내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영화를 볼 때면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감상하기보다는 약간 관찰 모드가 되는 것 같다. 흑백 화면의 생경함이라기보다 시공간적 배경과 배우들의 연기 패턴 등 영화적 요소 자체의 거리감 때문에 몰입이 어렵기도 하고 말이다. 그 유명한 다다미샷을 확인하는 게 흥미로웠고 일상의 한 부분을 그대로 옮긴 듯한 디테일과 대사들이 인상적이었으며, 현대적인 감각과 표현들 덕분에 신파적인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아 신기하기도 했다. '현재'를 담아내는 필름의 기능은 당연한 것이지만 70년 전 일본, 구할은 고인이 됐을 배우들의 생생함 때문에 그 자체로 쓸쓸하고 아련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라는 찬사에 공감하기에 나는 너무나 관찰자 모드일 수밖에 없었다.
5/12 cgv서면 임권택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