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19. 10. 17. 01:03


오랜만에 본 자비에 돌란의 영화, 아직도 30대 초반이라니... 풋풋한 얼굴과 젊음을 보며 일찍부터 만개한 천재의 시간이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고, 영화는 뭔가 자전적인 이야기일 것만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어렸을 적부터 단짝이었던 마티아스와 막심, 그리고 친구들 그룹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두 주인공의 감정 동요와 변화와 함께 매우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십 년 이상 우정을 이어가는 학창시절 친구들의 현재 상황은 각자의 배경과 성장과정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다양하게 나뉘었지만, 모이기만 하면 지난 이야기며 어릴 적부터 즐겨하던 낱말게임이며 갖은 장난들로 시끌벅적한 우정은 변함이 없다. 그 중에서도 마티아스와 막심은 속 깊은 얘기 대신 툭툭 내뱉는 농담과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보완하고 의지하며 오랜 세월을 함께한 관계다.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친구 동생의 영화 프로젝트에 출연하며 딥키스를 나누게 된 두 사람, 이후 잘 나가는 직장인이자 진하게 교제하는 여자친구도 있는 마티아스의 감정과 이성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도 나지 않는 마티아스는 마음 속의 불안과 갈증을 예민한 공격성으로 회피하려 하지만, 막심을 제외하면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폭풍 같은 파고를 감당해내기 어렵다.
일자리와 경험을 위해 호주로 떠나기로 한 막심은 오랜 불화를 거듭해온 엄마의 후견 문제로 전쟁같은 날들을 보내며 환송회를 거듭하고 있다. 이혼한 마티아스 아버지에게 부탁한 추천서는 소식이 없고, 어릴 적부터 살뜰한 애정을 베풀어준 마티아스의 엄마는 마지막까지 애틋하게 막심을 챙긴다.
막심 역시, 마티아스와의 키스 이후 심연으로부터 떠오른 감정을 의식하며 혼란스럽지만 그 누구와도 나눌 수는 없는 비밀로 묻어둔다.
친구들과의 마지막 환송회 자리, 여자친구의 충고에 자리를 피할 수 없어 함께한 마티아스는 결국 막심만이 간파할 수 있는 속마음을 선을 넘는 말들로 폭발시키고 친구들과 주먹다짐까지 벌인다. 그대로 떠날 순 없어 돌아와 사과하고 어색하게 막심 주변에 자리잡은 마티아스, 둘만의 공간에서 다시 마주한 둘은 피차 인정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어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마음을 온몸으로 나눈다. 하지만 이십 년 넘게 공유해 온 과거와 둘을 둘러싼 친구들의 우정, 가족들과의 관계, 무엇보다 스스로의 이성이 납득할 수 없는 사랑은 무겁고도 두려운 현실이다.
후반부에서는 마티아스와 막심의, 너무나 섬세하고 예민한 감정연기가 그야말로 폭발한다. 더 이상 금기나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많은 이들이 인정하지만, 그것이 곧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때 또 그 상대가 오랜 세월과 인연 들을 공유한 친구일 때, ‘문제’의 질은 분명 달라질 것만 같다. 

자비에 돌란 감독이 연기한 막심은, 여러 차원의 핸디캡과 마이너리티를 담고 있는 캐릭터였다. 마티아스와 막심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수다스럽고 높은 텐션의 캐릭터들이어서, 말수도 적고 속엣말도 거의 하지 않는 마티아스의 번민과 그저 무던히 견디는 듯한 막심의 그늘이 참으로 애잔했다. 깊은 연기와 연출을 함께해내는, 활자로 표현할 수 없는 생동하는 이미지와 음악들까지 적재적소에 채워넣은 자비에 돌란의 영화에 다시 한 번 경탄한 시간.

 

10/8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24회 부산국제영화제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