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19. 10. 13. 13:25

 

찬사를 먼저 접해서 정작 영화에서 김빠지면 어쩌지 했으나 명불허전이었다.
몽페르메유는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집필한 곳이자 지금은 비백인과 이주자들이 주로 살아가는 버려진 파리 외곽 지역 중 하나다. 영화의 배경이자 감독이 실제로 유년기를 보낸 곳이고, 영화 속엔 자전적인 경험이 담겨 있다고 한다.
가난과 불운과 폭력이 넘치는 이곳에서는 경찰과 동네를 장악한 각종 범죄 조직들의 적대적 공생으로 간신히 ‘소극적 평화’가 유지된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은 중퇴자그룹이라 불리는 지역 출신과 짝을 이뤄 조폭처럼 순찰을 돌며 지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태생의 억울함과 울분을 마음 깊이 담은 이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거칠게 살아간다.
경찰관인 전처의 근무지 근처에서 아들을 자주 보기 위해 임지를 자원한 스테판의 부임 첫날, 하루 동안 몽페르메유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영화의 내용이다.
학교를 다니는지 알 수 없이 종일 몰려다니는 아이들 중 무리의 리더격이자 사고뭉치인 이사가 동네 주변 서커스단의 새끼사자를 훔쳐 분위기가 사나워지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사를 찾아 심문하려던 경찰들은 이사와 친구들과의 추격전 끝에 대치 중고무탄을 발사한다. 고무탄에 얼굴을 맞은 이사는 혼절하고 이 장면은 일상적으로 동네를 촬영하는 뷔즈의 드론에 고스란히 찍힌다.
이사의 안전보다 촬영 파일을 손에 넣기에 급급한 선임들은 사건이 알려질까 두려워 정보망을 총동원해 뷔즈를 찾기에 바쁘고, 나름 양심적이고 강직한 경찰 스테판은 약국을 찾아 응급처치를 먼저 하지만 선임들에 의해 이사는 다른 곳에 맡겨진다. 수소문 끝에 뷔즈를 만난 경찰들은, 과거 조폭이었으나 손을 씻고 식당을 운영하며 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이와 스테판의 협상으로 메모리를 확보하고, 선임들은 이사를 협박해 사건을 은폐하고자 한다. 하지만 드론 촬영이 아니라도 수십 개의 눈이 그 현장을 목격했고, 폭발하는 아이들의 분노를 막을 길은 없다.
감독과 스테판역을 연기한 배우가 무대인사와 GV에 함께했는데, 진행을 맡은 프로그래머의 영화에 대한 진한 애정과 관객들의 환호로 극장이 호혜로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인종주의와 빈곤 속에서 성장하며 늘 촬영을 했고 그 경험을 재료로 단편영화를 만들고 그 힘으로 어렵사리 장편영화를 세상에 선보이고 지구적 찬사의 중심에 선 감독의 메시지는, 더 많은 싸움이 일어나고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화로 무엇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자문운, 100분쯤 그저 영화를 통해 그 세계를 보았을 뿐인 일개 관객의 회의라고 생각하며... 칸영화제 때 마크롱 대통령에게 이 영화를 봐달라고 메시지를 전했고 엘리제궁에서의 상영 제안이 왔지만 거절하고, 영화를 촬영한 지역에서 함께 보자는 역제안 이후 답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순과 차별의 한가운데를 뚫고나온 폭발적인 영화의 원동력은 감독과 그들의 삶에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안팎으로 감동적인 작품, 개봉하면 한 번 더 보려고 한다.

 

10/7,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24회 부산국제영화제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