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대상이나 문구에 혹하지 말자고 다짐해도 순간 껌뻑 넘어가곤 하는 홍보 덕에 내게로 왔고 이번의 미끼는 "디디온은 내 수호성인이다. 그의 진실들은 작은 칼이며, 표면을 뚫고 삶, 특히 캘리포니아의 삶이라는 환상이 피를 흘리게 한다."라는 매력적인 추천사를 붙인 그레타 거윅이었다. 저자는 1934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출생했고, 약 50년 후 그곳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레타 거윅은 고향에 대한 애증과 추억을 담은 영화들을 찍고 이국만리에 사는 나까지 그 영화들을 보았고 하여 궁금해졌는데, 해설까지 읽고 나니 그레타 거윅에게 조앤 디디온은 살아있는 우상일 수 있겠다 싶어졌다.
수록된 글들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1965~67년에 잡지에 기고한 것이다. 1부 '황금의 땅 라이프스타일'에는 당시 미국에서 이미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당대의 사회문화적 현상이나 이슈가 된 사건들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고 묘사하고 참여관찰한 기록들이 묶여 있고, 2부 '개인적인 글들'에는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3부 '마음의 일곱 장소'는 저자의 고향과 살았거나 방문했던 곳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건조하고 덤덤하게 쓰여진 서문에는 “... 내가 쓰는 글은 무조건, 간혹 불필요하리만큼, 내가 느끼는 바를 반영한다.”라는 문장이 있었고, "글 쓰는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를 팔아넘기고 있다는 것"이라는 단호한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서부 개척시대의 근선조들로부터 이어진 대가족의 세계에서 성장한 저자가, 세계대전 이후 전통(?)이 급속히 파괴되고 전방위적이고 혁명적인 변화가 지속되는 시기에 벌어지는 갖은 현상을 바라보고 체험하며 쓴 글들이었는데, 에세이나 짧은 소설처럼 느껴지는 글들이 많았음에도 쉽게 잘 읽히지는 않았다. 설명을 위해서 혹은 빗대는 표현으로 당대의 인물과 작품명, 지명 그리고 관련된 역사적이거나 당시의 중요한 사건들이 무척 많이 거론되는데, 잡지 기고글이니 평균적인(?) 독자를 위해 쓰여졌겠지만 미국인도 캘리포니아인도 아니고 그 시대와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소화하기도 의미를 짐작하기도 힘든 부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간다는 건 버몬트나 시카고로 돌아가는 것과는 다르다”라는 문장에서 내가 이해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이런 류의 문장이 꽤 많아서 사실 끝까지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지기도 했다.
한편 어느 때, 어디라도 세계는 역사적 순간을 관통하고 있고 그를 포착하고 해석하고 기록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고 유통되고 전승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보편성 위에서, 책에 담긴 내용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기는 했다. 물론 그중 어떤 일은 그 사회적 파장과 잠재력으로 인해 당대에 이미 역사적인 위상을 부여받기도 할 것이고, 어떤 일은 당대의 폭발력에 비해 쉽게 잊히기도 하겠지만. 저자는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언어의 통달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몸 바쳐 믿고 있기에”라고 스스로 표현할 만큼의 인텔리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확신하는 체계에서 미끄러진 아이들, 한순간에 일고의 가치없이 밀려나는 사람들, 폭력적으로 부서지면서도 열광과 환호의 대상이 되는 세계에 대해 주로 다룬다.
고향인 새크라멘토에서 벌어진 어떤 살인사건과 재판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글로부터 시작해 표제작인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까지 읽고 나서야, 저자의 시선과 사유가 총체적으로 뜨겁게 사회와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에 반항한다기보다는 사회를 아예 모른다”고 표현한 아이들이 몰려들어 마약과 비참이 난무하는 샌프란시스코는 기존 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실험하는 장으로 부상하고, 낙원의 섬 하와이는 부도덕한 전쟁과 숱한 젊은 죽음들을 딛고 만개하고 있었으며, 예술과 자유로 상징되는 선망의 뉴욕은 저자에게는 (비록 지금은 살고 있다지만) 온전한 거처가 될 수 없는 곳이었다. 곡창지대와 계곡이었던 고향은 방위산업으로 개발되면서 급변하고 대대로 살아온 토착민들은 이방인들로부터 소외된다.
번역자의 해설에서 '반지성주의'로 통칭되는 문제적 현상과 현장에 대한 기록과 분석들은 구체적인 양상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에도 흥미로웠다. 수십 년의 시간과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여기에서도 다름없이 유효하게 작동하는 사회의 '발전' 방향성이 그랬고, “내 유년기의 캘리포니아에서 변함없는 점이라고는 그것이 사라지는 속도뿐이다.”, “우리가 늙어가면서 잃어버리는 것들, 우리가 깨뜨리는 약속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라고 토로한 세계의 보편성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해설과 책 소개에서는 저자가 정립한 문체와 그 위상에 대한 찬사가 많았는데 번역에서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겠지만 원문을 모른 채 그 부분에 대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넓어지는 회오리 속에서 돌고 돌고
매는 매잡이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산산이 해체된다. 중심이 버티지 못한다.
그저 무정부 상태가 세상에 풀려 퍼지고
피로 흐려진 조수가 풀리고 사방에서
무구함을 받드는 의식이 물에 잠겨 가라앉는다.
가장 훌륭한 이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가장 저열한 자들은
치열한 열정으로 충만하다.
틀림없이 뭔가 계시가 임박해 있다.
틀림없이 재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재림! 그 단어를 내뱉자마자
'세계정신'에서 광막한 이미지가 나와
내 시야를 괴롭힌다. 어딘가 사막의 모래 속에서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가 붙은 형상이,
태양처럼 무표정하고 무자비한 시선이
느릿한 허벅지를 움직이고, 그 주위로 온통
성난 사막 새들의 그림자가 비틀거린다.
어둠이 다시 툭 떨어진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이십 세기에 걸친 돌 같은 잠이
흔들리는 요람에 동요해 악몽으로 변했다는 걸.
그리고 이제 어떤 거친 짐승들이, 마침내 도래한 그들의 시간을 맞아,
태어나 베들레헴을 덮치려 웅크리고 있는가?
- W. B. 예이츠
제목을 따왔으며 책의 서두에 전문이 실린 예이츠의 시 "The Second Coming(재림)"은 찾아보니 1919년에 쓰이고 1920년에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책이 쓰인 1960년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세계에 대한 개탄과 회의를 웅변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어쩌면 문명화된 혹은 문명화되지 않은 어떤 세계가 있더라도,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이 실현되지 않는 한 세계는 언제나 이러한 상태로 유지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 삶의 한 시기를 갈아넣으며 쓴 글들의 예리한 정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이렇게나 모호하게 기분과 짐작으로만 읽어버린 게 민망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푸른 밤]이 그리고 2000년대 이후의 세계를 저자는 어떻게 보고 느끼며 살아가는지가 약간 궁금해졌다.
조앤 디디온•김선형 옮김
2021.4.8.초판1쇄발행,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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