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2. 6. 11. 23:39

 

 


처음엔 너무 화려한 출연진들이 연예인 그 자체로만 보여서 몰입이 어려웠다. 선아/소영은 아이유로 보이고 동수는 강동원으로 보이고 배두나도 이주영도 송강호도 마찬가지. 여수 현장의 형사로 분한 백현진도 이상하게 그냥 백현진으로만 보였고, 좋아하는 김선영마저 그랬다. 작품으로든 셀럽으로서의 존재감으로든 익숙한 이미지가 공고한 출연진들의 아우라가 전반적으로 영화를 압도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 잘 모르는 외국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를 보며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걸까 싶기도 했다. 반대로 한국의 탑스타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각광받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그런 뻘생각을 하면서 눈과 마음은 오케이세탁의 낡은 봉고를 따라갔고 영덕에선가 강길우가 등장했을 때는 여배우는 그가 아니었지만 얼핏 비슷한 느낌이기도 해서 순간 [온세상이 하얗다]의 그들이 살아남아 돌아온 것 같아 불쑥 반갑기도 했다.

 

잔뜩 날을 세우던 선아가 두 남자와 뭔가 협조적인 관계로 급변한 계기가 의아하게 여겨졌지만,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얼마 후 아이유가 조금씩 소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통통 튀면서도 순진한 해진이 불어넣는 활기까지 더해지면서 마음 한 편의 의구심이 조금씩 사라졌다(어쩌면 그러길 바라면서 영화를 본 결과일지도 모른다.). "굳이 혼자 다 하려고 할 필요 없어." 힘이 들어간 대사는 아니었지만 상현이 소영에게 건네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고, 좀은 작위적이고 그야말로 영화 속이어서 가능한 상황이라고 느껴졌지만 선아가 함께한 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전하는 말 "태어나줘서 고마워."에서는 약간의 오글거림과 함께 뭉클함이 전해졌고 반짝 다가오는 영화의 위로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후반부의 어떤 상황과 장면들에서는 [어느 가족]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브로커]가 훨씬 더 계산되고 자연스러움이 덜하다는 느낌이었지만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디 안 가는구나 싶은 잔잔함과 따스함은 마음에 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나름 챙겨본 편이고 대부분은 꽤 좋았기 때문에 차올랐던 기대에 비하면 많이 아쉽기는 했다. 한국에 실재하는 베이비박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라고 들었는데, 아기를 유기하는 여성과 범죄조직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어눌하고 아마추어 같은 일당들과 실적 혹은 범죄의 일소를 위해 누구보다 범죄의 성립을 바라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형사 그리고 임신과 출산과 유기에 이를 수밖에 없는 여성의 개인사에 얽힌 또 다른 범죄와 그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와 그 범죄 피해자 아내의 사주를 받아 아기를 추적하는 또 다른 일당의 존재 등은 물론 동수의 서사를 떠받치고 해진의 터전이 되는 보육원에 불법적으로 아기를 원하는 몇 커플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 이상으로 가지를 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 모두를 실시간 다원 생방송처럼 펼쳐놓은 영화의 지평이 오버스럽게 느껴졌고, 복잡하게 줄기를 뻗은 에피소드들이 잘 맞물리기보다 덜컹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세계적인 거장 감독과 적지 않은 탑스타들의 만남에 걸맞는 스케일을 구사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한국 영화를 만들면 이렇게 되는 걸까 싶기도 해서 아쉬움이 크다. 사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도 좋아하는 에단 호크가 나옴에도 전작들에 비하면 큰 감흥이 없었는데, 높아지는 감독의 위상과 함께 영화가 변하는 과정일까 싶기도 하다. 일본 배우들을 잘 모르기도 하고 신인을 발굴해 출연시켰다고 듣기도 했던 예전 영화들이 좋았던 이유가 도화지 같은 초면의 배우들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앞으로 그의 신작에서는 많이 좋아했던 [아무도 모른다]나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같은 느낌은 다시 받을 수 없는 걸까 싶어 많이 서운하다. 음,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아주 나쁘지는 않았는데 쓰다 보니 이래저래 안타까운 분기점에 선 영화를 보고야 만 느낌이 드네. 그러나 아마 나는 그의 영화를 계속 찾아볼 테니, 다음 번에는 내가 모르는 배우들과 만든 섬세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6/10 cgv서면삼정타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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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