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1. 1. 16. 01:05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아버지의 승진 소식을 전하는 엄마, 그러나 며칠 후 아버지는 회사를 관두었다며 짐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활달한 엄마와 딸 미키와 달리 아버지와 아키오는 내성적이고 과묵하다. 특히 아버지는 아키오의 회상과 기억 속이 아니면 입을 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함께 살게 된 아버지는 떨어져 있을 때와 별다름없이 가족들 사이에서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복귀한 회사 선배 시즈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키오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수십 년간 일이 전부였던 어색한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는 걸 고민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그에게, 아버지는 늘 무뚝뚝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떠올린 '파이널 판타지', 원하는 걸 사주겠다는 아버지와 함께 간 장난감가게에서 아키오는 ‘파이널 판타지’를 골랐고 한동안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파이널 판타지'는 판타스틱하게 업그레이드되었고, 아키오의 생활은 회사와 가정이라는 현실과 아오르제아로 이분되어 있다. 매일이다시피 접속해 게임만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격려와 위로를 주고받는 친구들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아키오는 게임 속 동료들에게 속마음을 토로하며, 아버지를 '파이널 판타지' 14의 세계로 초대할 계획을 세운다. 

집으로 돌아온 뒤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고 경직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아버지는 아키오의 선물을 받아들인다. 현실에서는 살가운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하는 아버지와 아키오는 게임 속에서 인디존스와 메이데이로, 서서히 친구가 되어 간다. 가족의 생계와 자식의 교육이라는 무거운 짐을 수십 년 짊어졌던, 어느 날 돈 벌어오는 자의 위치에서 내려온 아버지에게 '파이널 판타지'는 새로운 세상을 선사한다.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품고 아버지는 게임 속 세계로 서서히 빠져든다.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속마음을 게임 속의 동료들인 익명의 타인들에게 이야기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도전과 성취를 통해 조금씩 자신감과 용기를 얻는다. 반전의 정점은 다소 뻔하고 이후 계산된 감동과 눈물 타임이 이어지지만,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 전개였다.  

이번엔 1천 원 관람쿠폰으로 봤다. 어떤 일본영화들은 무척 오글거리고 민망하여 선택을 심히 후회하게 되는데, 이를 테면 문화가있는날 할인으로 봤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경우가 그랬다. '1,100만을 울린 감동 실화'라는 홍보문구가 불안했는데, 다행히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웠고 다소 예측가능했지만 많이 억지스럽지 않았다. 

 

게임도 '파이널 판타지'도 전혀 모르지만, 게임에 입문하는 아버지의 디테일한 변화는 재미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마음을 두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식상하지만 크게 무리 없는 전개로 진행되는 잔잔한 영화였는데, 엔딩타이틀과 함께 흐르는 주제가의 가사가 '어버이 은혜' 수준이라 마지막에 혼자 빵 터졌다.


20210115
롯데시네마통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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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