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12. 11. 2. 04:40

 

 

무겁고 피곤한 몸을 끌고 굳이 왜 그 날 "피에타"를 보러 갔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오감이 확 열리는 듯 환하게 설레는 예고편을 보았으니 바로 "서칭포슈가맨". 짧은 예고편으로 처음 알게 됐지만 그의 노래에 열광하고 그의 궤적을 열정적으로 쫓으며 다큐 한 편을 만들어 낸 누군가들의 유쾌한 진심과 벅찬 에너지가 객석에 앉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해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무거운 여운을 달고 극장문을 나선 이후로도 잊지 않고 언제 볼 수 있을까 마음으로 꼽아왔던 영화. 의리스럽게도 예고편은 물론 관련 블로그에서도 꿋꿋이 스포일러를 감춰둔 덕에 오랜만에 잔뜩 감정이입하면서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가며 진심으로 흐뭇하게 웃어도 가며, 그렇게 봤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밥 딜런이니 지미 헨드릭스 같은 이들이 풍미하던 시대의 한 귀퉁이, 가난한 이주민들이 일거리를 찾아 스며들었던 삭막한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음유시인처럼 노래하며 일용잡부로 살아가던 슈가맨 로드리게즈. 사십 년 전쯤 고향 디트로이트에서 그가 불렀던 처연하고 애틋한 노래들은 두 장의 음반으로만 남았지만, 바다를 건너간 노래들은 갑갑한 현실에 갇혀 있던 남아공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의 분신이니 권총자살이니 하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만 전설처럼 무성한 채 종적을 알 수 없는 노래의 주인공을 찾아나선 열혈팬들로부터 (다행히 페이크다큐가 아니라는) 이 영화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노래 가사로 단서를 추적하며 웹사이트에 광고를 내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한 두 사람 덕에 불운한 천재 뮤지션이기도 노래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평범한 노동자이기도 했던 젊은 날의 슈가맨, 마침내는 고향집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가는 로드리게즈옹이 모습을 드러내신다. 

 

사십 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이런저런 공사판에서의 잡일들로 하루하루의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전설 속의 뮤지션, 그는 접을 수밖에 없었던 꿈과 비루한 현실을 저울질하지 않고 자신이 있는 삶의 자리에 존엄을 더하며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열광의 기억이 원하는 것은 결코 크고 화려하고 빛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매료시키고 사로잡았던 그 모습이 변치 않은 거라는 걸... 영화 속의 로드리게즈옹과 즈음 자주 접하는 아저씨를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별 하는 것도 없이 이것저것 주워들은 간접 경험이 마치 내 것인양 갈수록 방자해지는 내 마음과 지금 내가 있는 자리를 생각했다. 발견의 기쁨과 헌정의 벅참이 스크린 밖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영화다 보니, 어느 정도 미화된 면이야 있겠지만... 이런 사람, 이런 노래,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다. 공연장에서 "I wonder"가 시작될 때의 환호와 감동, 누군가에 대한 팬심을 간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그 감정이 울컥 올라와 옛날 생각이 나더라. 이제는 알게 되었지만... 훌륭한(?) 사람은 내가 모르는 사람, 임을 이렇게 또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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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