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입소문과 너무 평이한 제목 사이에서 볼까 말까 했던 영화, "take this waltz"가 원제인 "우리도 사랑일까". 영롱한 햇살이 비치는 주방, 트레이에 반죽을 붓고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며 머핀을 굽는 여인의 실루엣은 뭔가 지치고 공허해 보였다. 오븐 속에 트레이를 넣고는 망연자실 주저 앉고 마는 그녀, 그리고 햇살 속 실루엣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그렇게 시작되어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싶었는...데, 영화의 마지막도 그렇게 페이드아웃. 그렇지. 그 어떤 격렬한 감정도 결국은 시작된 그 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녀가 잠시 시덥잖은 눈길을 주고 받고, 참으로 우연하게 비행기 좌석에 나란히 앉게 되고, 그도 모자라 알고 보니 바로 이웃에 살고 있더라는. 거의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어이 없는 개연성을 배경으로, 대체 뭔 일이 있었다고 저렇게나 서로 끌리고 난리냐 싶게 좀은 이입되지 않는 감정선을 그리는 듯 하더라만. 생각해 보면, 참 무서운 영화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도 버거워 어찌할 줄 모르는 일찍 결혼한 여자, 시도때도 없는 유치한 장난으로 내면의 깊은 불안을 달래고 등을 보이며 요리하는 남편에게 무시로 달라붙으며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절망하는 마고. '인생에는 수많은 빈 틈이 있고 그걸 다 메우면서 살 수는 없다.'는 술주정뱅이 시누이의 쏘아붙이는 진심도 '왜 그냥 괜찮기만 했어요?' 시큰둥한 결혼기념일 감상에 대한 데이빗의 살가운 질문도, 외롭고 외롭고 또 외로운 그녀의 영혼의 바닥을 건드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아이처럼 깔깔대다가도 금세 물기를 머금는, 웃음과 울음의 경계가 묘연한 마고의 표정이 불안과 허무와 긴장을 내려놓은 유일한 순간은 온전히 혼자가 되어 해방감을 만끽하는 스크램블러 엔딩씬. "take this waltz" 노래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습하는 권태를, 감정과 관계의 신랄함을 참으로 적나라하게 파헤쳐보이는 영화는, 관계와 사랑이 아니라 존재와 불안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화의 시작과 끝, 머핀을 만들며 오븐 앞에 넋 놓고 주저앉은 풍경 같은 마고와 햇살속 실루엣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데이빗. 그들이 주고받는 참으로 헛헛한 "사랑해, 사랑해"에 이어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자니, 심호흡 같은 한숨이 절로 나더라. 살아가는 일의 심연을 떠올리게 하는, 무참하도록 솔직한 영화였다. 실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애매하게 끼어 있거나 붕 떠있는 관계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주인공들에 심히 공감하며, 그런 상태와 상황이 세계를 온통 뒤흔드는 불편한 삶의 토양이라는 걸 수긍하며, 저 멀리 떨어진 곳의 누군가가 영화로 만들어줬다는 게 참 반가웠다. 하여 꽤나 오-랜만에 혼자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12월의 어느 날.
영화가 선사해 준 현실감각으로 담담히 돌아본 주말의 결론은... 해석을 통한 호감의 고양과 그 자명한 한계를 알지만 필요했던 시간들을 이제 떠나보내면 어떨까 하는 것. 교감되지 못하는 감정은 결국 이렇게 담담한 인정을 부른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7개월을 넘게 버텨준 나의 허상에게, 마음 깊은 곳의 인사를.
영화가 선사해 준 현실감각으로 담담히 돌아본 주말의 결론은... 해석을 통한 호감의 고양과 그 자명한 한계를 알지만 필요했던 시간들을 이제 떠나보내면 어떨까 하는 것. 교감되지 못하는 감정은 결국 이렇게 담담한 인정을 부른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7개월을 넘게 버텨준 나의 허상에게, 마음 깊은 곳의 인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