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키운팔할2006. 9. 18. 02:00


오랜 시간이 걸렸어  
아직도 길은 멀기만 하다 
살아가기 위해  
모든 걸 조금씩 놔버리네 

바람이 불고 있어   
늘 이런 날이면
    
추억만을 위해   
살아있는 것만 같아   
  

어디선가 네가  
웃으며 올 것만 같아 
웃는 예쁜 얼굴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게 전부는 아닐거야     
그리운 사람이 너무 많아   
지치지 않기 위해 
하늘을 보네
  

 

작사,곡 황보령


 
 

산뜻한 '출발'을 듣다가 문득 '오랜 시간'이 떠올랐다. 불과 오 년 전에 낸 음반인데도 그녀의 이름은 멀리 사라진 느낌이다. 그녀의 노래를 열심히 듣는 측은 아니다. 다시 발매가 됐을수도 있지만 그녀의 1집 음반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는 일찍 희귀음반 목록에 올랐었다. 하지만 몹시 궁했던 2000년의 어느 날, 주제 넘게 너무 많이 가진 것들 단지 소장용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처분하기로 했을 때 제일 먼저 손이 갔던 음반 중에 하나였다. 그녀의 음악이 별로였다기보다 언젠가부터 수집하듯 음반을 모으던 내게, 그다지 코드가 맞지 않는 펑크음반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졸부의 호사벽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꽤나 좋아했던 방준석의 프로듀싱이었음에도, 1집에서 들었던 노래들이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그후 때로 '황보령'의 이름을 마주칠 때마다, 궁하기는 하지만 사기는 치지 않겠다며 이미 절판된 음반을 살 때보다 더 싸게 보냈던 게 생각 나서 솔직히 좀 속이 쓰리기도 했었다.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없애고 사는 것과의 차이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물론 잊으면 그만이지만. 하지만 몇 년 후 새 음반을 가지고 그녀가 나타났을 때, 나는 소시적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사들였다.
 

98년은 홍대 앞에서 폭발한 소위 인디씬의 황금기였다. '인디'는 밑바닥이기도 했지만 한편 특별한 주목을 받는 새로운 권력(?)의 가능성과도 무척 가깝게 있었던 것 같다. 그해 가을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렸던 단편영화제의 첫 날, '스케이트'와 '간과 감자', '햇빛 자르는 아이'를 묶어 상영하는 자리에서는 어어부가 공연을 했고 객석에는 나같은 얼치기 관객과 함께 임권택 안성기 같은 영화계 거물이 앉아있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날 영화가 끝난 뒤 극장 통로에 서 있던 황보령은 음색만큼이나 독특한 느낌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려나, 지금은 뭘 하는지 알 수 없지만 2001년 '태양륜'으로 돌아온 황보령의 음악은 난해하고 가까이 하기 힘들었던 1집 때와는 조금 다르다. 여전히 우주적이고 비밀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펑크노니 하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하며 나로서는 친화력 제로인 음악이 가득했던 1집에 비하면 말이다. 게다가 '오랜 시간'을 들으면 심지어 위로가 된다. 너무 많은 말이 악덕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말부림의 쾌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게, 간단히 말하고 단순하게 말하며 속을 내보이는 건 일종의 가르침이다. 2002년 9월 7일, 그러고보니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때는 몰랐지만 사는 건 늘 이게 전부는 아니다.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