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키운팔할2006. 10. 12. 03:00


아침에 보던 그 맑은 햇살과
당신의 고웁던 참 사랑이
 
푸른 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스며들던 날이 언제인가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 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 놓고  
말은 한 마디도 못한 것은
당신의 그 모습이 깨어질까봐
슬픈 눈동자로 바라만 보았소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 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낙엽이 지고 또 눈이 쌓이면  
아름답던 사랑 돌아오리라
언제보아도 변함없는
나의 고운 사랑 그대로를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 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작사,곡 이주호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나는 할머니랑 한 방을 썼다. 1학년 봄부터 살았던 그 집은 소위 '미니이층'이라고 불리던, 아래층에는 셋집이 살고 외부의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구조였고 방이 세 개 있었다. 3학년때까지는 함께 방을 썼던 오빠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중간방에서 자취를 하던 누군가 대신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고작 4학년 주제에 나는 그게 무척 부러웠는데, 텔레비전도 없고 중학생이라고 혼자 자기를 강요당했던 오빠는 처음에 꽤나 징징대며 밤마다 할머니와 내가 있던 방으로 몸을 날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철없는 오빠도 어엿한 중학생, 사춘기가 찾아왔을테고 언젠가부터 그 방은 아주 비밀스러운 방이 되어버렸다. 아직은 심형래의 크리스마스캐롤(이건 4학년 겨울, 학교에서 튼다고 샀던 기억이 있다, "달릴까 마알까" 그 엄청난 센세이션..;;)이랑 구창모의 '희나리' 말고는 소장 테잎이랄 게 없었던 나와 달리, 오빠는 동네 레코드가게를 열심히 들락거리며 낡은 턴테이블에 올릴 lp들을 사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천적싸가지 동생이 자기 물건을 어떻게 할까 싶었던지, 엄마 아빠가 없는 낮에는 오로지 자기 편인 할머니를 구슬려 방의 출입을 막았던 것 같기도 하다. 드럽고 치사해서, 그리고 실은 별로 관심도 없어서 무시하던 4학년때를 지나... 나는 자주 그 방을 찾았다.
 

구창모의 '희나리'가 대히트를 기록했던 85년, 이제 나는 다 큰 5학년이었고 아직 내 라디오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수완 좋게 오빠가 돌아오기 전까지 왕영은의 '젊은이의 노래'며 장유진의 '가요산책' 같은 방송을 열심히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즈음 소도둑 된 심정으로, 이전에는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lp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내 손으로 턴테이블에 lp를 얹고 노래를 들었다. 좀은 재미없었던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가 첫곡으로 흘러나온 그 음반은, 낙엽 가득한 산길을 걸어가는 두 남자의 뒷모습 사진이 박힌 해바라기의 2집 '그 날 이후'였다.
 

이영훈과 이문세 콤비의 멜랑꼬리 발라드가 fm을 평정하던 시절이었다. 너무 어른의 노래같기도 했고 양보 없는 쓸쓸함 같은 게 느껴져서 좀은 지루했지만, 이상한 인내를 발휘해가며 뒷면의 '어허야 둥기둥기'까지 나는 열심히 들었다. 어쩐지 음악을 들으려면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고 정직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뒷면의 중간쯤 이 노래가 있었다. '사랑의 시'나 '갈 수 없는 나라'도 좋았지만, 주변 공기를 달리 만드는 것도 같고 나른한 슬픔을 담은 것도 같은 이주호의 목소리에 실린 이 노래가 나는 유독 좋았다. 그때도 대략 그늘지고 우울한 것들을 향한 어두운 연정을 자주 품고 지냈던 터라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어쩐지 우수에 찬 분위기에 젖어들었던 것도 같다.
 

뜬금없이 며칠 전부터 이 노래가 맴돌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그렇게 좋아했던 이주호의 목소리 말고, 한영애의 읊조림으로. 나는 그녀의 공연에 가본 적이 없다. 그녀가 한창일 때는 내가 좀 어렸고, 이 버전이 실려있는 세번째 음반을 꽤 좋아해서 테잎이 늘어지도록 반복해 들었던 고1 때는 가야할 공연이 너무 많아서 여력이 없었다. 몇 년 전 옛노래들을 다시 부른 'behind time'의 '오동나무'를 꽤 좋아하기는 했었지만, 어쩐지 나는 그녀의 귀기어린 절규가 늘 약간 부담스러웠다. 생각해보면 '갈증'과 '여울목', '여인#3', '달', '따라가면 좋겠네' 같은 노래를 꽤나 좋아했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문득 한참 전 우연히 그녀를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로 뒷골목에, 공연 뒤풀이가 자주 열렸던 '행운'이라는 식당에서였다. 한쪽 방에서는 무슨 공연의 뒤풀이가 흥청망청, 무슨 일 때문인지 잠시 플로어로 나왔다가 너무 귀여운 아가를 발견했다. 늦은 시각이었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긴장이 풀린 채 서로에게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작고 예쁜 아가를 보러 다가갔는데, 그 아가가 한영애에게 안겨 있었다. 그녀 역시 나처럼, 누군가의 작은 아가가 너무 예뻐서 안아보고 얼러보는 중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익히 듣던 노래에서 뿜어져나오던 광기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해사한 얼굴이었다. 단지 아가 때문에 마주한 처지여서 순진한 웃음이 오갔고, 그 뿐이다. cbs인지 어디에서 문화정보 프로그램 dj로 앉은 그녀의 목소리에 좀 낯설어 했던 게 그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 노래가 떠올랐을까. 북한핵이 어쩌고 하며 뒤숭숭하던 대낮, 사무실에서 문득이었다.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정말 쌩뚱맞게. cd를 갖고 있지 않아 bugs에서 다운을 받고 며칠 내내 듣는다. 그녀는 이 노래를 서너 번쯤 불렀을 것이다. 다짐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회한도 없이, 이렇게 숨죽이듯 그렇지만 담담하게 부르는 노래가 좋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눈물이 난다. 벼락치듯 갑자기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이렇게 읊조리고 있으면 세상이 고요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아마 아련하게 다정한 옛 일이 떠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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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