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키운팔할2006. 8. 31. 03:30

 

꽃이 만발하는 계절 가고 
휑한 바람 부니 
부초처럼 떠 돈 하! 많은 세월 
아리랑 고개 무심쿠나 
어디메요 어디메요   
내 가는 곳 어디메요
    
텅 빈 저자거리 위로   
초저녁 별만 반짝인다   
  

내 어릴 적 장대 들고  
별을 따던 손엔 
의미 없는 욕망으로 
찌들어진 나날들이 
푸르고저 푸르고저   
내 쌓은 것 무엇이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빌던 
영혼의 노래 듣자꾸나
  

슬기로운 영혼 어김없이 타야 할  
꽃마차의 꿈 꾸시며 
얽히고 설킨 삶의 애증들을 
애착에 매듭 푸시겠지  
뉘 말할까 뉘 말할까   
내 이룬 것 영원하다 
    
한 끼면 족할 우리 삶이   
움켜쥔 건 무엇이오

우리의 생이 단 한 번 핀  
섦도록 고운 꽃이구나 
취해도 좋을 삶을 팔고찾는 
장돌뱅이로 산천 떠도세
 
가야겠네 가야겠네   
이 땅을 위한 춤을 추며 
    
어우아 넘자 어우아 넘자   
새벽별도 흐른다 ...

 

 

작사,곡 곽성삼
 

 

https://www.youtube.com/watch?v=-RXcixnL9kY
 

 

아침저녁, 가을처럼 선선하다.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며, 어서 날씨가 서늘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언제 들어도 곽성삼 아저씨의 노래는 짠하지만, 너무 더운 날에는 감당하기 힘든 가슴을 조여오는 생의 무게가 담겨있는 목소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의 노래에는 외면할 수 없는 진정성 거부할 수 없는 생명력 같은 게 담겨 있어 가볍게 듣기에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 가쁜 호흡으로 몰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어쩐지 나도 꽤 사연 많은 삶을 살아온 듯한 느낌에 괜히 한숨이 나오곤 한다.

지금은 경기도 양지에서 '고물잡이'로 살아가며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고 있는 가인 곽성삼. 한때는 성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꽤 촉망받는 작곡가 겸 가수였다 하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주유원, 경비원, 보일러공, 외판원 등으로 떠돌며 작업한 음반을 들고서 이십여 년만에 다시 나타난 때가 2001년이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강촌의 윌까페에서 그의 작은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뒤늦게 알게 된 존재, 어렵사리 구한 그의 지난 노래까지 들으며 감읍하고 있던 터라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도 '곽성삼'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고, 큰 기대는 없었지만 들려준 노래에도 다들 별 반응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제는 연락이 끊겨 버렸지만 늘 반은 정신이 나가있는 듯한,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불가해한 관계로 이따금 연락을 주고 받던 후배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엠티철이 아닌 비 오는 공휴일의 강촌 윌까페는 불과 두세 테이블을 차지한 손님들로 조용했고, 그들 중 누구도 공연을 보러 온 듯한 낌새는 아니었다. 잘은 모르지만 분명 흔한 공연은 아닐 텐데 참 난감한 분위기다 싶어 지레 걱정을 얹어 후배와 맥주를 나누다보니 어스름 저녁이 되었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조금은 어수선하게 별다른 주목은 없는 채로 무대에 오른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형형히 빛나는 눈을 가진 촌로 같은 모습이었다. 한 시간 가량, 많지 않은 노래로 이어진 그의 무대는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의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가 힘겹게 노래를 안고 살아온 세월의 자락이 풀어헤쳐진 것만 같았다. 좀은 꿈꾸는 듯이 공연이 끝나고, 다행히 그를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모시는 중년의 사내가 나타나 초라한 무대의 쓸쓸함을 보전하는 것 같았고 자리를 마련한 주인장 아저씨도 정성껏 예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유일하게 공연에 집중하는 객석이었을 우리 테이블에 그가 찾아왔다.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비오는 날 서울에서 먼 걸음을 마다 않은 팬(?)의 존재에 그는 꽤 반색을 했고 졸지에 나는 민망한 사명감(외로운 가인에게는 든든한 귀가 필요하다는!)에 사로잡혀 가져갔던 씨디 부클릿에 싸인까지 받고 말았다. 맥주잔을 부딪히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도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상황적으로 나와 후배는 꽤 훌륭한 젊은이들이 되어버렸고 강촌까지 친히 공연에 나선 '선생님'을 보필하는 아저씨와 함께 경기도 어느 산 속에 자리 잡은 '귀곡산장'이란 까페에 들러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그 만남은 이런저런 긴 이야기와 함께 다음 날 낮까지 이어졌다.

곽성삼 아저씨는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게 자기의 노래와 삶을 보듬어 안고 가는 사람인 것 같다. 거의 아무도 그의 노래를 알아주지 않지만 존경스러울 만큼 당당하고 고집스럽다. 이미 중년을 넘어 선 나이지만 그리고 참으로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생활 속에 놓여 있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들이 개의할 조건이 전혀 아닌 것 같다. '한단고기'에 열을 올리며 새로운 작업에 골몰하는 것 같았는데, 그 쪽은 차마 마음이 동하지 않아 이따금 생각이 나면 옛 노래를 듣고 좋은 음악을 새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정도가 내가 가진 그에 대한 관심이다. 경비실에서 화성악 악보를 펼쳐놓고 공부를 했다는 그의 중년, 그리고 이제 오십대 중반에 접어드는 그는 낮에는 고물을 잡고 밤에는 음악을 구상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겨운 마음이 되고는 한다.


 

 

'나를키운팔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집, 백창우  (0) 2006.09.05
삼봉이와춘팔이, 티삼스  (0) 2006.09.02
신개발지구에서, 한동헌  (0) 2006.08.29
푸른하늘본지도참오래되었지, 나팔꽃  (0) 2006.08.27
nino에서, 김형철  (0) 2006.08.25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