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너의 뒷모습을 보내며
아무런 말 하지 못한 채
어리석게 돌아오리라 기대했지
다신 만나지 않을 거라던
너의 그 말 채 끝맺기 전에
서둘러 난 눈물을 지워야했는데
하지만 너 떠난 후에야
사랑을 알 수 있었지
그 옛날 그 기억만으로
가끔씩 비 내리던 밤 가로등 아래
불 꺼진 창문을 보며 홀로 기대어 널
사랑했던 것만으로도 가슴 저린
힘겨운 기대 속에서
너와 함께 옛날로 가곤 했지
아침 버스를 기다린 널
먼 발치서 바라만 보다
무거운 후회 속에 돌아오곤 했지
친구를 기다리다 우연히 널
nino에서 마주친 순간
너무 당황해 어색한 웃음만 서로
조금 짙어진 듯한 낯선 화장과
변해버린 짧은 머릴 보며
뒤 돌아 선 너의 마음처럼 돌아설 수밖에
그 파랗던 하늘은 어느 새
비라도 내릴 것 같았지
그 옛날 그 기억 속에서
예전에 둘이 걷던 그 거리 거리
변한 게 하나 없었지 너 없는 나만
추억도 때론 잊고 사는 거라며
그리워 비틀거려도 체념해야 되겠지
그러나 세월 지나 어느 날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하여도
가끔씩은 뜻하지 않게 생각이 나겠지
작사,곡 김형철
8월 4일날 발견(!)을 했으니, 벌써 3주나 지났다. 그 동안 정말 줄창 들었다. 나 때문에 이 노래가 닳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진장. 연일 무덥고 습한 날씨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시절을 생각나게 해줘서 좋다'던 아저씨의 말과 함께,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시절 그리고 그 밤의 공기까지 함께 떠오르는 것 같아 더 그러고 있는지도.
97년에는 cbs 라디오에 '김장훈의 우리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매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라디오데이즈'였던 관계로 밤 10시 이후 새벽 3시까지는 늘 라디오와 함께 였는데, 대학생이 된 후에는 전처럼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아저씨가 dj를 맡은 게 반가우면서도 내심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첫 방송이 3월 2일인가? 개강날였는데 결국 10시까지 집에 못 오고 길에서 잘 안 잡히는 워크맨 주파수를 초조하게 맞춰댔었다. 'nino에서'는 그 '우리들'에서만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래 중 하나였다. 물론 '우리들'이 방송되는 동안에는 주파수 돌릴 일이 없어 그렇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소위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 그들의 음악이 소중히(?) 여겨지던 90년대의 종교방송 심야 프로그램은 선곡에 있어서 일종의 해방구와 같았다. bbs의 '밤의 창가에서'와 cbs의 '꿈과 음악사이에' 그리고 자주 듣지는 않았지만 pbc의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곧잘 듣고 싶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귀한 음악인들이 초대손님으로 나오고는 했었다. 또 그런 프로그램들은 대개 고정 청취자들에게 호의적이어서 신청곡도 잘 들려주고, 모든 음반을 살 수 없었던 나는 방송 시간 내내 공테잎을 맞춰놓고 성공적인 노래 녹음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꽤 중요한 일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의 dj들은 고맙게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노래의 전주가 나올 때 무드 잡고 곡목과 가수를 소개하는 따위의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던 것 같다.
김형철이 보컬로 참여했던 신촌블루스 음반의 '내 맘속에 내리는 비는'을 무척 좋아했던 터라, 이 노래를 우연히 처음 들었을 때는 한참을 잊고 지냈던 소중한 친구가 돌아온 것 같은 과장된 반가움에 설레기까지 했었다. 주로 책상 위 스탠드만 켜놓고 라디오를 들었던 탓에, 마음까지 괜히 센치해져서 어떤 노래는 듣다 보면 괜히 눈물을 불러내기도 하던 때였다. 또 그렇게 각별하게 들은 노래들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무방비상태에서 다시 들려와도, 비밀스런 스탠드 불빛 아래 노래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던 캄캄한 내 방의 공기 같은 게 손에 잡힐 듯 떠오른다.
사실 이 노래, 별 건 없다. 각별한 내 기억과 맞물린 덕분에 무척이나 특별한 노래가 되었지만 가사는 그야말로 나는 유행가예요, 라고 말하는 듯 신파의 극치 통속의 끝이다. 귀 기울여 가사를 옮겨 적다보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편 이렇게나 뻔한 연애의 전말을 담은 노래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실연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담은 노래가, 그렇게도 없는 것처럼 묻혀버린 게 아쉽기도 하다. 또 하나 이 노래가 좋은 이유는, 딕션이라고 해야 하나.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 지는 모르겠는데, 노래하는 사람의 발음과 억양과 창법과 뉘앙스 등속이 어우러진 독특한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내 마음의 귀에 걸리는 몇 소절의 절절함 때문이다. 기대 속에서, 우연히 널, 비틀거려도, 이런 부분이 너무 짠하게 아프다. 흡흡, 어인 사춘기 소녀.
얼핏 2년 전쯤의 소식으로 고향인 대구에서 노래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직도 그럴까? 각별히 노래를 좋아하게 되면 노래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경험적으로 판단하는 편이지만, 이 노래는 라이브로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실은 며칠 동안 아저씨가 다시 불렀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정말 바람이고. 이 노래는, 사람에 대한 별다른 로망은 없이 그저 시절에 취한 거니까 큰 기대나 실망 같은 건 없을 것 같다. 대구에 사는 사촌을 통하면 알아볼 수 있을까. 말하고 나니깐 정말 꼭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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