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2. 7. 5. 23:43



주요 사건은 삼촌 조니와 9살 조카 제시의 만남과 그를 통한 남매의 화해, 가족의 의미 재발견 정도가 되겠지만 시작부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줄기차게 나오고 중간중간 학술적인 레퍼런스가 인용된 덕에 어떤 질적 연구의 과정을 섬세하게 담은 영화처럼 느껴졌다. 미래와 삶에 대한 질문에 또박또박 정제된 답변을 내놓는 인터뷰이 어린이들과 온전히 일상을 함께하며 혼을 빼놓는 제시의 대비가 한 인간을 양육하는 일의 지난함을 잘 보여주었고, 조니에게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능청스럽게 알려주는 제시가 맹랑하게도 느껴졌지만 어린이는 자신의 수준에서 그 자체로 완결된 지혜를 보유한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머니의 간병으로 인한 갈등, 질리지도 않는 고아놀이에 질문이 끊이지 않는 제시, 남편 폴의 병과 노이로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비브가 종종 절규하지만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잔잔하고 사색적이라고 느껴진 작품이었다. "미래가 어떨 것으로 같니?", "감정이 일렁일 때는 언제니?" 등 반복되는 질문에 대한 각양각색의 솔직한 답변들이 새롭게 다가왔고, 인터뷰 녹음파일을 듣고 인터뷰에 대한 단상을 녹음하며 기록하는 조니의 정적인 모습과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일상적인 텐션으로 연기하는 호아킨 피닉스를 볼 때면 (둘의 얼굴이 별로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실례스럽게도 은연중에 리버 피닉스가 나이를 먹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게 되는데, 역시나 상상이 되지는 않았다.

 

내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겠지만, 몰입이 필요한 영화였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별 감흥을 느낄 수 없었던 게 아쉽다. 상영 내내 과자 비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계단에 손을 털며 시선을 분산시키는 앞의 앞 자리 인간 때문에 정말 짜증이 났고, 영화 감상의 절반은 객석 컨디션이 좌우한다는 걸 절감했다. 아이처럼 순수한 몰두와 유연함을 가지지 못한 어른으로서, 좋아할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놓친 기분이라 서운하다. 



7/4 cgv서면 임권택관

 

 

'빛의걸음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어]  (0) 2022.07.06
[호수의 이방인]  (0) 2022.07.05
[헤어질 결심]  (0) 2022.07.05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0) 2022.06.11
[브로커]  (0) 2022.06.11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