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2012. 5. 17. 00:38

 

사는 게 참 피곤하다. 당일치기로 충주에를 다녀왔는데 몸이 천근만근. 차를 많이 타기는 했지만 집과 터미널 왕복 1시간, 서울과 충주 왕복 3시간 20분 남짓, 겨우 4시간 반 가량의 이동에도 이렇게 지쳐버리다니. 생각해보니 일 시작한 뒤로 늘 이런 컨디션이다. 좀전에는 혹시 내가 어디 아픈가,하는 생각도 들었더랬는데... 딱히 병이 난 적이 없어서 이게 아픈 건지 피곤한 건지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무려나 정신이건 육체건 그다지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는 정도의 자각.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안한 마음가짐이 어렵다보니 약간 만성피로 느낌이다. 꼴랑 한 달 반이지만... 생각해보면 사무실에서는 거의 10분도 여유로운 적이 없고...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사무실에서는 콩쥐가 되는 것 같은 기분.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거기에 골몰하는 게 또 하나의 일이 될 것 같아 고민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이래저래 답답해서 얼마 전에는 전화기 바탕화면을 3월 여행에서 찍은 사진으로 바꿨는데... 솔직히 3월 여행 무척 피곤했다. 무려 12년 전이기는 하지만, 나름 5주나 혼자서 유럽을 빨빨거리고 다닐 때는 정말 피곤한 줄도 힘든 줄도 몰랐는데. 이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가.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고 휴대폰이니 블로그 이미지를 여행에서 찍은 사진으로 바꿔놓기는 했지만, 어떤 여행을 하면 피곤하지 않고 복잡한 일상에서 놓여난 느낌이 들런지 별로 상상이 되질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몸도 편한 여행이면 좋겠지만... 내 팔자에 그런 게 있기나 할까?

 

마음 속으로는 이런저런 상상을 여전히 그만 두지 못하고, 페북 프로필에서 위로를 조작하는 짓거리 역시 하나의 작은 의례처럼 그만 두지 못하고 있는데. 아, 정말 약간 신기하기는 하다. 페북이 독심술을 하는 건지 뭔지, 어쩜 그렇게 딱딱 그가 나와줄까. 가끔은 한 큐에, 가끔은 여고괴담마냥 뚝. 뚝. 뚝. 전진해서 맨 앞으로. 신기하게 생각하다가도 니가 그만큼 기웃거렸잖니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사실 좀 멋적고 웃기기는 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의 웃는 표정 덕분에, 내 드나듦의 결과이건 위로조작술의 효과이건 실은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건 어쨌거나 그렇게 해놓고 나면 기분은 좋아진다는 것. 아직은 뭐 짝사랑이라거나 상사병이라거나 하는 꼬리표를 달 정도는 아니니 그런대로 아주 작은 일상의 쉼표, 정도인데... 그러기를 벌써 한 달이 넘었으니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사실 내가 아는 그는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눴던 고작 몇 시간이 전부. 만약 그때의 모습이 그의 평소 모습이라면, 사실 이상형에 가깝기는 하다. 헤어지기 전 그의 마지막 질문과 나의 대답 사이를 가르던... 순간 공기의 질량 변화, 직전까지는.

 

어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에 나온 아저씨를 봤다. 나름 특집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올해가 바로 2012년, 고3때 20년 후에는! 하며 다짐했던 바로 그 해. 이십년 전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위치에 아저씨가 있고, 마찬가지로 이십년 전에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내가 걸어왔다. 어느 한 때는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게 살아가도 어느 먼 날에는 만나지겠거니 했었지만, 이제는 내용적으로 일치하는 부분도 거의 없고. 근데, 무척 오랜만에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제비꽃" 덕분에, 그 옛날... "영아의 이야기"니 "케 세라" 같은 노래들을 나직이 부르던 시절의 아저씨가 떠올랐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무려나, 모르던 시절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게 참 새삼스럽다. 참 오랜 세월 나의 우상, 아저씨.

 

생각해 보면 짧게든 길게든, 얕게든 깊게든 어느 한 시절 내 마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어줬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저 멀리 별이기도 있고, 더 멀리 이미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도 했고, 가끔은 바로 곁의 다정한 친구이기도 했고, 그저 스쳐지나가기도 했던 수많은 사람들. 마음을 차지한 면적과 밀도는 다를지언정, 그들 모두가 나를 살게 한 사람들이라는 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서야 순순히 인정한다. 물론 그때, 거기, 그들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인연들이 소중한 만큼 어거지로 담아둔다고 마냥 좋았을 것만은 아니었겠지. 그래서 가끔 생각하고 또 궁금해한다. 지금 내 주변에 흩뿌려진 사람들, 인간관계라고 할 만한 것도 이제 별로 안 남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가 또 지금의 나를 살게 하고, 한 동안 내게 위로가 되어줄까. 그러고보면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건 사람,이라는 참 당연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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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