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행성 뉴타이티에서 선주민들을 노예로 삼고 잔혹한 지배자로 군림하는 지휘관 데이비드슨, 선주민과의 소통으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하며 경험한 특별한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류보프 박사, 데이비드슨의 강간으로 아내를 잃고 류보프의 동료로 통역사 역할을 하며 후에 저항의 선두에 서는 애스시인 셀버. 그리고 더 많은 지구인들과 행성의 선주민들이 등장하는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다 .
황폐해진 지구로 목재를 공급하기 위해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외계 행성을 정복해 황무지로 만들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마구 짓밟는 지구인의 행태는, 과거의 역사를 우주로 확장해 그대로 반복하는 모양새. 일차원적인 폭력에서 다변화된 방식으로 지배의 양식을 변화한 제국주의는 지속되고 있고 지구인에게 반성은 없다. 월등한 기술과 물리력을 내세워 외계 행성들을 정벌하고 비틀린 욕망을 채우는 지구인들에게, 인류가 발전하며 체득하고 정립한 공존을 위한 중요한 가치들은 실질적인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세계와 숲이 동의어이고, 신을 번역자로 꿈을 뿌리로 여기며 살아가던 애스시인들은 다툼을 모르는 평화로운 종족으로 여겨졌다. 지구인들의 수탈과 억압으로 무참히 파괴된 삶과 세계를 지키기 위해 애스시인들은 반격에 나서고 마침내 성공하지만, 침공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살육과 폐허로 그들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유일한 친구였던 류보프의 허망한 죽음과 공멸에 가까운 참상, 사태를 최악으로 만든 데이비드슨은 마지막까지 모두가 만류하는 보복을 감행하며 지구인의 어리석음을 웅변한다.
추천자의 개인 사정으로 모임은 하지 못한 12월의 모임 책이었다. 한때 김초엽의 소설들을 몇 권 읽으며 잠깐 SF 장르를 접했었고, 이전에 책 모임에서 [잔류 인구]로 르귄의 작품을 처음 읽었었다. 어떤 스토리든 감상은 대체로 비슷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낯선 개념과 논리와 존재와 현상 들을 다른 감각을 동원해 상상하고 이해해야 하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고, 그리하여 감흥이 없었다. 작품 속 지구인의 몰이해와 오만함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책 읽기의 즐거움은 소중한 것이므로 성향과 취향의 문제라는 데에 한 표를 행사하기로.
어슐러 K. 르귄•최준영 옮김
2012.10.8.1판1쇄찍음 10.15.1판1쇄펴냄,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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