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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일기2024. 12. 27. 23:23

 

 

통영에서의 마지막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엔 집에 마지막 손님이 왔고, 오늘은 아마도 마지막 지인 만남. 뚜벅이가 된 터라 약속 장소인 강구안까지 오랜만에 걸었다. 차가운 공기 속을 걸으면서 너드커넥션의 “좋은 밤 좋은 꿈” “우린 노래가 될까”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를 리핏하며 들었다. 그러고 싶고 인적도 없어 운하를 따라 걸으며 적당히 따라 불렀는데 물론 기분이겠지만 겹쳐 들리는 목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고향 음식 좋아하는 통영산 지인 H와 저녁 식사를 하고 카페 대신 노래방에 가자고 했는데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강구안 인근 항남동의 노래방은 다 유흥주점이어서 코인노래방을 검색했는데 주변에는 없었다. 몇 년 전 G랑 임윤찬과 광주시향 공연을 본 후 벅찬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범음악적 코스로 노래방에 갔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배도 부른 김에 밤길을 걸었다. 호기롭게 너드커넥션의 노래를 선택해 부르며 서영주의 위대함을 실감했고, “알아요 나도 수없이 해봤어요 노력이라는 걸 말예요” 부분을 제외하고 가사에 무척 공감했던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는 차마 부를 수 없어 말았다. 공간이 좁고 반주가 열악한 코인노래방을 탓하기엔, 오랫동안 수련을 중단한 나의 노래가 너무 형편없었지만 밤 10시가 다가오자 신분증 확인 후 보너스로 주는 20분까지 알뜰하게 챙기며 노래를 불렀다.

 

H는 마지막으로 일한 단체의 대표였고 나이차가 많이 나는 지인이다. 스스럼없는 성격 덕분에 처음부터 편하게 친해졌는데, 그 역시 영화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어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여행으로 오가며 이주를 마음먹을 즈음 그의 고향이 통영임을 알게 됐고, 내가 여행으로 그가 고향 방문차 통영에 머물던 언젠가는 차를 빌려 곳곳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이사하고 지쳐있던 저녁 마침 통영에 와서 햄버거를 사다주고 엇갈리게 끼워진 베란다 창호를 제대로 정리해줬었는데, 마지막 만남도 H가 됐다. 이번 통영행은 홀로 계신 노모를 수도권으로 모셔가기 위한 길이었다. 통영에서 지내는 동안 몇 달에 한 번은 어머니를 뵈러 고향을 방문하는 그와 만났다. 용건 없는 연락은 하지 않는 나와 달리, 옛날 사람 특유의 정 같은 것인지 때로 안부 전화를 하는 덕에 계속 이어진 인연이었다. 너무 크지 않은 스케일로 바다와 삶이 어우러진 듯한 통영의 풍경은 여전히 좋지만, 이곳에서 지낸 시간들은 결과적으로 밤 같았다. 자초했지만 밤은 어둡고 차갑고 뭐 그렇다. 좋은 밤들이 더러 있었는데, 오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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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