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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노트2013. 9. 17. 02:19





지금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에 난 밥을 정말 싫어했었다. 엄마는 직장에 나가고 오빠랑 나를 돌봐주신 친할머니는 뇌구조의 구할 쯤이 남존여비로 채워진 분이셨던 덕에 내가 밥을 먹든 말든 별 간섭을 안 해주셨다. 사춘기 때는 먹는다는 것 자체가 주는 동물적인 느낌에 대한 거부감과 공복감의 황홀이 장난 아니어서 밥 먹듯이 굶으며 지냈었다. 고딩 때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영양실조란 말을 듣고 엄마한테 엄청나게 욕을 먹으면서도 내심 흐뭇했었던 기억. 대략 입 짧은 아이로 한참을 살다가 밥심,이란 걸 온몸으로 느낀 게 서른 즈음이었다. 문해교육단체에서 일하며 평일 오전엔 늘 수업이 있었는데, 빈속에 두 시간을 떠들고 나서 몰려오는 허기를 달래주는 밥이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고작 밥 한 끼에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경험은 딴엔 무척 자존심 상하는 것이었지만... 하는 게 없으니 배도 안 고팠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밥을 저주하며 지냈던 지난 삼십 년을 돌이켜 보며 무참히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밥심은 이제 나 역시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일상의 동력이다. 


열 두 명의 동지들이, 그 밥을 끊은 지 일주일이 더 지났다. 아주 가끔 한나절이나 1박 2일 투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피곤에 절은 몸은 관절마다 쑤셔오고 열 시간 쯤은 자줘야 그나마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길바닥을 집 삼아 일터 삼아 몇 년을 살아 온 동지들의 몸은 대체 어떤 상태일까 혼자 생각한다. 지금이야 싸움의 한복판에서 긴장한 채 지내니 버텨지는 것일 테지만, 언젠가 싸움이 마무리된 후에 온전하게 건강을 회복하기까지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그렇게 싸워 온 사람들이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일주일을 넘게 보냈고, 앞으로 얼마를 더 굶어야 할 지도 당장은 기약이 없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누구나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나 역시, 마음이 참 그렇다.


쌍차 동지들의 집단단식 소식을 들으며,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겨우 국정조사 따위를 위해 온갖 투쟁을 불사하고도 다시 집단단식을 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 힘없는 냉소는 비겁함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참으로 답답하더라. 단식이나 고공농성 같은 자해적 방식은, 힘없는 자들이 집단적으로 세력화될 수 있을 때는 선택하지 않는 투쟁일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합리적 방식으로, 시스템 속에서 정연하게, 법치와 질서에 어긋남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고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때 그러나 멈출 수 없을 때... 모두가 물리적으로는 한 사람일 수밖에 없으니, 결국 제 몸을 볼모로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 게 아닐까. 실은 이미 스물 네 사람이 유언도 없이 택한 죽음으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법이며 정치가, 권력이며 언론이, 방치하고 외면하고 왜곡한 사태의 진실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변한 건 별로 없으니 회계조작 정리해고를 풀어헤치기 위해 가는 길 위에는, 숱한 죽음을 딛고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원초적인 몸부림들만이 가득하다. 정말이지 징그럽다.


곡기를 끊어 진실을 찾으려는 투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읽었던 카프카의 '단식광대'가 떠올랐다. 한 세기쯤 전에 나온, 흥행주와 계약을 맺고서 갈채를 보내는 대중들을 앞에 두고 외롭지만 자랑스레 단식을 이어가는 광대의 이야기. 볼거리가 별로 없었을 그 시절, 단식광대는 도시와 농촌을 순회하며 '상연'할 만큼 남녀노소 모두가 환호하는 공연의 주인공이었다. 단식이라는 남다른 기예를 보유한 자존감 높은 광대 그리고 엄격한 의전과 철저한 제한을 통해 관객의 관심과 열광을 고조시키려는 흥행주. 하지만 물론 단식광대의 존재감은 관객들의 반응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예술이 되기엔 다른 장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여줄 게 없고 별로 미학적이지도 않은, 그러나 우리에 가둬진 채 보통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단식을 밥 먹듯이 하는 광대의 사활을 건 공연, 그야말로 시위. 들려주든 보여주든 대체로 행위를 전제로 하는 예술과 먹지 않음이라는 반-행위와 그로 인한 변화들은, 언제나 좀 더 자극적인 볼거리를 원하는 대중들의 조바심을 채워주기엔 한계가 자명하다. 물론 오늘 대한문에서 곡기를 끊고 있는 동지들을 단식광대와 비교하려는 건 아니다. 허나, 다르다면 또 무엇이 다를까. 단식광대에게 단식은 존재의 재현방식이자 목적이었다,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단식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렵다.


함께 밥 먹으며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다. 고작 하루지만, 함께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망할 놈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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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3. 9. 11. 02:30



이제 종로에 남은 유일한 애착 장소는 낙원상가 옥상의 극장이다. 영화도 영화지만... 골목을 들어설 때 훅 끼치는 비릿하고 역한 냄새와 퇴락한 건물의 낮은 옥상에서 담배를 물고 바라보는, 등을 훤히 드러낸 낡은 용달들과 신기루처럼 우뚝 선 주변 빌딩들의 부조화스런 풍경. '낙원'의 꼭대기에 서면 화려하고 쓸쓸한 도시의 두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와 마음이 곧잘 애잔해졌었다. 칠 벗겨진 시멘트 난간에 붙어 너머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마치 본 적 있는 것처럼 아직은 기억에 남아있다. 전에 갔을 때 한복판에 둘러친 펜스들에 내심 불안했는데, 공사를 마친 옥상은 답답한 하늘정원에 난간까지 데크질로 어색한 리모델링을 싹 해버렸더라. 기억도 머지 않아 사라지겠지.
다소 작위적인 기대를 얹었던 영화는, 사년 동안이나 매달렸다는 감독에게 괜히 미안할 만큼 별 감흥이 없었다. "망종"이나 "똥파리" 정도를 기대한 게 오산인지, 삶의 무거움에 하염없이 천착하는 젊은 치기에 공명하지 못하는 무뎌짐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생-초면의 영화에 대한 기대의 출처는 오로지 김두수였고, 정갈한 떨림이 살아있는 목소리로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정화되는 듯한 노래는 여전했다. 새삼 느끼는 여전함의 소중함에 반색하다보니, 어쨌거나 연-기를 거쳐야하는 영화와 만든 이가 직접 부르는 노래가 주는 울림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거란 생각도 살짝. 물론 몰입에 실패한 영화 감상 탓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좀은 터덜터덜한 기분으로 돌아오며, 마음의 복잡함을 영화로 덮으려는 욕심은 아니었나 자문도 해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올 가을엔 마음 바닥까지 건드려주는 영화 한 편 볼 수 있음 좋겠다. 이것도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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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3. 9. 6. 01:00


추모연대 의장님의 조사가 마음에 와서 콕 박혔다, '과도하게'라는 말과 함께. 과도하게... 박정식 동지가 스스로를 던진 것만을 이르는 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찰나 진심이란 게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지만, 원래 보이지도 않는 마음들이 자꾸 사라져가니 모두들 '과도하게' 결의하고 말하고 틀에 맞추는 건 아닐까 싶어졌다. 그렇게 너무 멀리 온 건 아닐까 싶었다. 열사면 투쟁하고 동지면 안 하고, 열사면 추모하고 동지면 안 하고. 그런 거 아닐 텐데... 함께 투쟁하다 골방에서 생을 마감하는 동지를 '열사'라 명명해야만 더 가열찬 투쟁을 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거야말로 동지의 죽음만큼이나 슬프고 아픈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보이지 않는, 작은 마음 하나하나 들이 모여 일으키는 거대한 분노와 슬픔이 진짜 힘이 되는, 그런 날을 향하는 여정 위에 있는 거라고 믿고 싶어졌다. '죽어도 함께, 살아도 함께, 승리의 축배도 함께', 박준 동지와 함께 부른 노래처럼 진정 "동지가 있기에" "탈환"을 꿈꿀 수 있는 그런 투쟁을 함께 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잃어버린 마음의 행방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날, 날아가는 말들과 보이지 않는 마음들조차 온전히 서로 믿을 수 있는 날을 생각하며 동지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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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3. 9. 2. 02:16





"모든 전쟁은 쩐의 전쟁. 모든 전쟁은 자본의 논리" 부산의 자유로운 영혼 스카웨이커스의 노래가 흐르는 현대자동차 담벼락의 흉물스런 양철펜스들과 정문을 막은 컨테이너. 돈만 아는 저질들의 내재된 공포를 공장이 웅변하고 있었다. 


백기완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말씀과 포효하는 노랫가락 오랜만에 들었다. 갈수록 거동이 불편해뵈는 몸으로 불편한 버스 타고 오셔서 대오에 힘을 주려 안간힘을 쓰신다. 노동자를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눠 죽이려는 자본의 거짓말에 속지말라고!


"아름다운사람"을 bgm으로 승객을 반기는 천의봉 동지의 영상편지에 이어 무대에 오른 최병승 동지. 자본은 노동자가 하나되어 싸울 수 없도록 온갖 덫과 술수와 계략을 포기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자존감과 결기로 끝내 모두 아름답기를, 바라며 응원!


극단 액트의 힘찬 무대, 역시 멋지다! 지난해 가을 명촌주차장 철탑 아래 현차비 3지회 조합원들의 횃불 파업 결의와 "우리 승리하리라"가 사무치게 떠올랐다. "철탑의 불씨를 현장의 파업으로!" 외칠 수 있었던, 그때는 박정식 동지도 함께였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등자보, 이제는 너무 바랜 것일까. 쉬운 일치는 아니었을 그 구호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박정식 동지를 평안히 보내드릴 수 있는 힘이 모아졌기를 바라며 서울로.


달을 넘겨 9월,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박정식 동지의 49재날. 

현대차 비정규직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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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3. 8. 27. 01:08


모르는 게 참 많지만, 시간과 경험이 쌓인다고 나 아닌 누군가-들의 '진실'을 과연 투명하게 알 수 있을까 싶다. 소아적이든 대승적이든 이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입장 차를 갖는 발화자-들의 진술은 라쇼몽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적어도 청자 입장에서는 말이다. 밀려오는 의문부호의 행렬을 잠시 멈추는 건 다만, 누구나 각자의 '진실' 속에 있다는 정도의 인정이다. 누군가의 확신도 나의 불신도, 누구나 입장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면에서 누구나 나와 너,라는 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평등이 아닐까 싶은 뻘생각. 솔직히 가끔은 강고한 의지보다 나약한 인간애, 배려와 예의 따위가 더 마음을 당긴다. 난 역시 한가한가.


https://www.youtube.com/watch?v=5NxlTDq6K98&sns=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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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3. 8. 24. 03:30


간만에 축 처진 몸이 되어 잠을 청하며 어찌됐든 마음이 텅 비니 참 가볍구나 싶었다. 다소 무리스러운 약속으로 마주앉았던 이의 넋두리를 떠올리며, 정말정말 이제 나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안도와 함께 약간의 대견함에 으쓱했는데... 내용을 막론하고 욕심이 뻗어나가는 길에는 언제나 요철처럼 잠복해있는 갈등과 모멸과 자괴감 따위를 펼쳐든 책장에서 마주쳤다. 비린내 따위 맡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건 이기호가 바라는 독후감이 아니겠으나, 감정이란 어디에든 불쑥 이입이 쉽고 사람도 소설도 어김없이 한 우주라는. 아무려나 나도 나무처럼 걸어가는 사람.


"그는 자신의 충동적인 결정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 때문에 비롯된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곳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수술에 대한 생각만 버린다면, 이 모든 모멸감과 수치스러움, 그리고 그것들을 감추기 위해 어쩌면 억지로 꾸며낸 모든 말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그러면서 그는 또 한편, 자신의 마음속에 한 번 들어왔던 희망이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러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것 역시 시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 / 누군가 그의 팔짱을 끼고 뒤를 돌아 서둘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뺨 위에선 계속 비린내가, 우유 냄새가 났지만, 그는 그것을 닦아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따라가기만 했다. 나무처럼 딱딱하게."

-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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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3. 8. 18. 02:00


저간의 사정을 알든 모르든 시작선에 선 누군가의 환한 얼굴과 대면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연정 작가의 인터뷰 글을 읽으며 가야겠다 맘을 굳히고, 그에게는 응원차 내게는 휴가차 다녀온 조성일 콘서트. 

길게 연재된 기사를 통해 개인적으로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누군가의 속사정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암튼, 오랜 방황과 침잠에 이어 퇴각하듯 떠밀려내려간 제주에서 작업했다는 노래들을 들으며... 구체적인 무대를 가질 수 있다는 건 꽤 행복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노래든 글이든 그림이든 업으로 삼는다는 건 대개 자유로움 이상의 곤궁과 불안정을 동반하는 것이겠지만, 그마저도 자양분 삼아 속에서 길어올린 무언가를 응원하는 이들과 나누는 경험이란 얼마나 귀하고 또 선택받은 일인가 싶은. 

물론 누구에게나 각자의 삶으로 펼쳐진 무대가 있다는 걸 안다. 나이를 먹을수록 관객 없는 일상을 쓸쓸히 버텨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따금은 퇴장 이후에도 막을 내리지 못하는 처절한 경우가 있지만. 어쨌거나 누구나의 생에는 누군가의 관심이든 부담이든 응원이든 책임이든 관계들이 엮이고 얽히기 마련. 그렇다면 아프게 먼저 떠난 동지의 무대는 결국 평안히 떠나보낼 수 있도록 남은 이들에게 맡겨진 걸까 싶은 생각도.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았지만 지난 시간의 깊은 상처와 아픈 흔적들이 녹아든 노래들이 많아 그런지, 공연을 보면서 문득 이건 한 삶의 몸부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감당할 수 없는 것들에 결박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스스로의 걸음으로 길을 나선, 이제 다시 시동을 걸었다는 사람의 노래와 몸짓에서 정말 살고 싶었던 것 같다는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싶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진하게 전해왔다. 열사투쟁이 여전한데 공연을 가는 게 맞나 혼자 고민하다 결국 왔는데, 잘 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 좋아했던 책에서 본 '진실한 생활에는 관객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많이 공감이 되어 가끔 되새기는 말인데 정말 그런 것 같다. 기준을 말할 수는 없지만 결국 '충만한' 삶이란, 누구에겐가 보여지는 무대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고 또 내가 만드는 나의 무대라는 것.

근데 민망하게도 공연에서 가장 마음을 번쩍 뜨이게 한 노래는 "회상"이었더랬다. 새로 들은 노래들이 아직 낯설기 때문이겠지. 오늘밤엔 "시동을 걸었어" 씨디 리핑을 하고, 공연에서 받은 밝고 환한 기운도 저장해놔야겠다. 기분 때문이었는지 마침내 웃음을 자주 느낀, 진심 "건투를 빌어요!"라고 말해주고픈 그리고 봄부터 내내 달려온 정감독님께도 "축하드려요!" 인사를 건네고픈 공연이었다. 여름휴가 일단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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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3. 8. 16. 03:30


각별하고 미더운 한 사람,에 대한 갈망이 살아날 때면 십오년 쯤 전 삐삐 음성사서함에 남겨져있던 절절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선배, 나 좀 살려주세요~" 모르는 번호임에도 연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후 좀은 불가해하게 이어졌던 인연. 가끔 그런 게 그립다. 예기치 못한 조우가 반갑고 맥락 없는 속내의 토로가 반짝이는 공감대로 확인됐던, 혼자선 엄두가 나지 않는 곳에 흔쾌히 함께일 수 있었던. 돌아보면 신기루 같기도 한 좀은 놀라운 시간들. 대학로 세속도시의즐거움도 인사동 섬도 이젠 그 자리에 없고, 곽성삼 아저씨가 고집스런 촌부처럼 핏대 세우며 노래하던 강촌 윌카페는 어찌 되었나. 가끔은 그런 내밀함을 나눌 관계 하나 없이, (암묵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투쟁하는 게 몹시 멋쩍은 일이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변을 먼저 챙겨야한다는 거랑은 다른 의미로. 차라리 외로우니까 투쟁한다고 말하면 솔직할까. 물론 살아있다면 피할 수 없는 걸 다른 무언가로 상쇄할 수 있다 가정하는 것 자체가 현혹이겠지만... 가끔은 답 없는 것보다 이미 답 나와있는 게 더 어렵다.


https://www.youtube.com/watch?v=-RXcixnL9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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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3. 8. 13. 23:30


지난해부터 공투단에서 화성공장 동지들 몇을 종종 봤고 트위터에서도 자주 보는데, 3M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해 노조탄압이 심하다는 거 말고는 별반 기억나는 게 없었다. 오후에 잡힌 노동자통제전략 관련 집담회를 앞두고 급하게 지역언론에서 방영된 영상이랑 자료들을 보면서... 그랬었지, 그랬었지. 

컨택터스 투입해 노조 깨려 했었고, 용역이랑 충돌 유발해서 조합원들 폭력 혐의 씌워 해고하고, 일상적 노조탈퇴 공작으로 열성조합원들 풀뽑기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짓거리 시키고. 뭐 그랬었다고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료를 보니 2009년에 노동조합 만들고 노조깨기전문 관리자 영입한 이후론 4년째 한결같은 상황의 지속. 타임라인에서 자주 마주치다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도 그렇구나 하며 익숙해지고, 투쟁을 글로 배운 결과가 이런 거구나 새삼~

집담회 주제도 그렇고 자료로 접한 투쟁 상황도 그렇고 해서 만나러 가는 마음이 그닥 가볍지는 않았는데, 두 시간 가량 얘기를 듣다보니 조합원들의 여유와 낙관에 오히려 힘이 나더라. 600여명으로 시작해 117명으로 줄어든 조합원들이 십수 년 일터에서 풀 뽑고 청소하는 일을 하고 일거수일투족 감시를 당하면서도 시작한 지 4년밖에 안 된 노동조합을 지키련다고 갖은 불이익과 모멸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에 남아있는 이유를 물으니 한 분이 대뜸, "그래도 떳떳하니까" 라고 말했다. 듣는 순간 살짝 울컥하면서 사실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더라. 물론 유쾌하게 들려준 얘기들보다 짐작도 못 할 고통스럽고 힘든 일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떳떳하니까" 말하며 버티는 동지들이 지쳐 포기하지 않도록 함께 싸우는 게 내가 선택한 길이다 싶기도 하고. 집담회 마치고 대검찰청 앞 투쟁을 향해가는 조합원들의 뒷모습이 참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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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3. 8. 12. 23:30


우리 행복중심 영등포는 밤마다 동별로 어디에 꽐라님들이 많은지 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갈지자로 걸으면서 술냄새 확 끼치는 아저씨들이랑 마주칠 때마다 이분이 민중이시다~ 세뇌라도 해야 귀가길이 덜 후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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