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감옥에 갇혔다.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서도 참 귀한 사람.
첫번째 희망버스를 타고 갈 때, 나는 시인과 같은 버스의 탑승객이었다. 기륭 투쟁에서 포크레인에 올랐다가 떨어져 당한 부상으로 목발을 짚은 모습으로 차에 오른 시인을 보았고, 영도로 향하는 길 모니터에서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함께 싸워온 시인과 여러 사람들의 영상을 보았다. 두번째 희망버스가 봉래교차로의 차벽과 물대포에 막혀 거리에서 새벽 난장이 펼쳐졌을 때에는 방송차 매연을 그대로 맡으며 주저 앉은 시인의 지치고 피곤한 얼굴을 보았다. 주머니에서 꼼지락꼼지락하던 초코바 하나를 용기 내어 전했다. 희망버스를 출발시킨 사람이 누구라고 어떻게 특정할 수 있겠냐마는... 난 그에게 정말 고마웠고, 그렇게 스리슬쩍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희망버스가 점점 커지면서는 현장에서 그를 목도하지 못했지만, 처절하게 아름다운 시로 존재를 토해내는 그는 어디에건 있었을 것이다.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화재참사가 났을 때, 지역에서는 GS해복투가 한창 투쟁 중이었다. 화재참사라고 부르지만 실은, 화마로부터 피할 수 없도록 이주노동자를 가둬버린 법무부의 반인권적인 행정에 의해 열 명이 목숨을 잃은 끔찍한 사건. 발생 3일 만에 북핵 타결 뉴스에 고스란히 묻혀 버리고 수사의 방향은 정확한 증거도 없이 고인이 된 이주노동자의 방화로 고착되었던 그 비극적인 현장의 한 복판에... 몇 년 째 지난한 투쟁 중인 GS해복투의 노동자들이 손으로 꼽을 만큼 있었고 그들은 가장 든든한 연대 동지들이었다. 시청 앞에 놓인 해복투의 트레이너에는 삶창에서 나온 갖은 책들과 시인의 <꿀잠>이 책꽂이 한 구석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고, 투쟁이 길어지면서 십여 명에서 대여섯으로 줄어든 싸움을 지키는 그들 중 한 분이 송경동 시인의 동생이라고 들었다. 아름다운 가계라고, 참 소중한 형제들이라고 감히 생각을 했었다. 책에도 삼형제의 이야기들을 비롯해서 시인이 살아온 이야기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여기는 감옥, 나는 나비'라는 프롤로그는 부산의 구치소에서 쓰여진 것이었다. 감옥에 갇힌 이후 종종 매체를 통해 만나는 시인의 편지들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 용산참사 투쟁으로 수배되어 유족들과 함께 병원에서 오래 지냈던 박래군씨가 이후의 인터뷰에서 시설장애인들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걸 본 적이 있었는데, 시인의 성찰은 조금 결이 다르지만 역시 가둔다고 가둘 수 없는 깊은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 물론 그와 별개로 억울한 갇힘은 아니될 일이지만.
시인은 감옥에 갇혔다. 그가 제안하는 희망버스를 기쁘게 함께 탔고, 그 덕분에 거리의 농성장 천막 안으로 발 딛을 용기를 내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쑥스러운 인사나마 건넬 수 있게 된 나는 갇힌 시인의 글을 읽고 이렇게 추억에 잠긴다. 감옥 따위, 시인의 몸을 잡아둘 수 있을 뿐 그 자유로운 영혼과 상상력은 더욱 너르고 깊어질 것이라고. 실은 분노에 피로해진 나태한 마음에 안주하는 것은 아닐까. 그가 구속된 이후 시인의 시를 한 편씩 올리는 누군가의 타임라인이 눈물 겹다, 잊지 않아야 할 마음. 꿈꾸는 자 잡혀갔지만 꿈도 잘 꾸지 않는 나는 또 무엇에 잡혀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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