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9. 22. 04:23


... 지식인 컴플렉스라도 있나, 과하게 지식인에 집착한다. 아직은 자리잡지못한 초보필자의 부담감?ㅠㅜ

• 글을 쓴다는 것,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세상에 제출한다는 것은 운동이다.

• 80년대 운동권 노래를 계속 부르기도 썰렁하고 무식하게 대중가요를 무작정 따라 부르기도 난처한 지식인들에게 대중음악 가수나 곡에 대해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해주는 평론과 연구들은 위안을 주었다.

• 논리적인 근거나 타당성 없이는 행동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익숙하지 않은 대중예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평론과 연구라는 고유의 해석판이 필요할 것이다.

• 리얼리즘은 지식인을 위해 마련된 장치이다. 비록 책상에 앉아 담배나 빨고 있지만 마음만은 칼바람 부는 벌판과 총탄이 빗발치는 계곡을 달리고 싶은 지식인의 당연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가상현실 체험이다.

• 그들의 공연은 용감하고 당당해 보였으며 그들의 댄스는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을 가르치는 어른둘이 같은 곳에서 판을 벌인가면 어떤 모습일까. 그 썰렁함과 퇴폐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 댄스음악은 록이 아니다. 그러나 록을 진정한 록일 수 있게 하는 이유가 이른바 록정신에 있다면 98년 한국의 틴에이저들은 댄스음악으로 록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 세상의 모든 파시즘은 언제나 '민족'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 사는 사람은 무조건 같은 민족이라는,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겨나는 것은 모두 민족적이고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파시즘을 부른다.

• <98년 월드컵> ... '패기와 정신력'이라는 실체가 없는 전력에 기대를 걸고 미쳐 간 이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순박한가 하는 생각

• 한대수의 자서전은 정직했다. 그는 쪼다가 아니었다. 그가 이 나라에서만 살던 사람들보다 먼저 '자유'와 '바람'을 먹었다는 게 언제나 문제였지만 그 역시 그의 죄는 아니었다.

•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보수적인 교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그저 '욕망'이다.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상인가.)

• '깃발 꼽는 지식인들' 

• 그들의 짝짓기가 가진 원시성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성적 매력(육체적 의미만이 아닌)을 기반으로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짝짓기에 돈과 계급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들에게 결혼이 없는 것은축복이었다.

• 광주항쟁 3주기가 되는 예배 시간. 목사는 감동적으로 설교했다. 목사가 눈물을 흘리자 신도들도 울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나도 흐느낌은 그치지 않았다. 땡. 교단의 종이 울리고 목사는 웃으며 야유회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신도들은 이제 야유회에 맞는 얼굴이 되었다. 장소에다 회비까지 정해지고 드디어 신도들은 개운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 교회는 한줌의 양심과 사회의식을 마스터베이션하고 있었다. 징그러웠다.

• 이른바 '이념적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나이'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삶의 진보성. 공허한 거대담론(이른바 '빛나는 시절', 수재형 좌파들의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던)이 아닌 일상과 생활의 진보성을 체득하는 일.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성적 차별의 문제였다.

• '정치 의식'을 초월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경제 의식' 아래에 머물 뿐이다.

• ... 그럴수록 이 나라가 단일 민족인 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고향 좀 다른 것 가지고도 이렇게 못 잡아먹어 난리인 사람들이 인종이 달랐다면 어땠을까.(99p)

• 양심과 정의를 가르치는 일이 학생의 인생을 그르치는 일이 되는 마당에, 선생이 단지 선생이라는 잉 로(영감이든 빠가사리든) 똑같은 권위를 부여받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따져야 할 일은 선생과 학생 사이의 권위적 질서가 아니라 인간(선생이라는)과 인간(학생이라는) 사이의 인격적 질서이며, 지켜야 할 건 '교권'(선생만의)이 아닌 '인권'(선생과 학생의)이다.

• 자상, 열상, 타박상, 골절, 총상, 그리고 자책감, 그리움 같은 광주의 '구체적 실감'이 사라진 사람들의 가슴속엔 민주, 열사, 항쟁, 성지, 기념식 같은 '역사적 추상'만 남았다.

• 톨레랑스는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같은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이 발전시킨 정신으로, 칼라스라는 사람이 신교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인누명을 뒤집어쓰고 죽게 되자 격분한 볼테르가 1763년 <톨레랑스 조약>이라는 소책자를 쓴 게 그 출발이다. 사르트르는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 치하에 있던 시절 알제리 독립군의 군자금 전달책을 자처했다. 사르트르를 반역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이 일자 드골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 (모든 사상은 한국에서 다이제스트판이 된다.)

• 민가협, 그들은 우리기 알량하나마 나름의 신념을 건사하고 살 수 있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담보로 제공한 사람들이다.

• 모든 검열의 목적은 한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그 기득권을 영속화하기 위해 그 사회의 정신세계를 묶어두려는 데 있다. 해서 검열은 언제나 한 사회의 정신적 생산물 가운데 가장 앞선, 가장 돌출된 부분만을 대상으로 한다.

• 시민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인수합병

• '빨간 눈사람'의 <민들레>, 90년대 후반 유가협 농성 다큐/다이렉트시네마(현실을 단독 유치하기 위해 모든 형식적 가능성을 포기하는 영화)

•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싸움은 절대선인 사람들과 절대악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자기성찰이 가능한 사람들과 자기성찰이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 말하자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이다.

• 80년대 중후반 한국의 인텔리들은 사회주의에 열광했다. 그것은 부르주아 인권운동이라는 정서적 재료가 민중민주 혁명운동이라는 과학으로 변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인텔리들은 본 회퍼를 덮고 그람시를 읽었으며 이내 레닌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인텔리들이 80년대 중후반의 불과 몇 년 동안 마치 펄펄 뛰는 연어처럼 네오맑시즘에서 맑시즘으로 사회주의 이론사를 거슬러 오를 수 있었던 건 대개 군사파시즘이라는 절대적인 억압상황 덕이었다. 군사파시즘이 완화되고 동구가 무너지자 그들의 열정은 구멍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사라져갔다.

•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란 안온한 시절에는 사고의 축이다가 절박함 속에선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그런 것인 것 같다. ... 현명한 사람이라면 죽음에 직면해서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지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 민주주의란 본디 작고 많은 비합법성을 모아 큰 변화를 이루는 시스템

• 지하의 뜨거움이 한 인간이 특별한 상황 속에서 한껏 고양된 뜨거움이라면 수영의 뜨거움은 한 인간이 일생에 걸쳐 성격처럼 지닐 수 있는 일상적 뜨거움이다.

•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강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 아웃사이더적 세력

• 가장 올바른 노선을 좇는 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진보적 노력(혹은 운동)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가장 올바른 노선은 언제나 그 노선에 기본적으로 합의하는 작은 이견들의 도움으로 완성된다. 문제는 그런 작은 이견은 필연적으로 밖에서 느끼기에 회색이고 안에서 느끼기에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경과가 보여주듯, 그런 작은 이견들이 묵살될 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진보적 노력(혹은 운동)은 찬란한 대의에 담긴 졸렬한 내용으로 남을 뿐이다.

• 청년들은 더 이상 계엄령을 선포하거나 양민을 총칼로 도륙하지 않는 적과 싸우느라, "운동의 대중화라는 말과 운동의 대의나 원칙을 지키는 일" 사이에서 일어나는 곤란을 깊은 자기성찰로 통과하고 있었다.

• 90년대 이후, 한국 정신세계의 가장 치명적인 특징은 '자본주의를 기정사실화' 하는 일이다. 물론 그런 현상은 전적으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를 사회주의 자체의 실패로 규정하려는 우파 한국인들의 욕망에 좌파 한국인들이 비굴하게 합의한 결과다.(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정신세계 최고 히트상품인 부르주아 시민운동은 그런 비굴한 합의가 낳은 최선의 열매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 듯 현실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한 졸렬한 시도였을 뿐, 그 실패가 자본주의를 기정사실화 하는 일로 연결된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 민족은 불순하지 않지만 민족주의는 대개 불순하다. 민족주의는 인간의 모든 선량한 정신들을 민족 단위로 한정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 '피착취 민족의 민족주의', 그것은 민족적 이기심을 넘어 인간의 인산에 대한 착취를 타파하는 보편적 인간해방의 가치를 갖는다.

• 나는 비로소 분노와 분별력을 잃은 엘리트의 자부란 그저 어릿광대의 자부임을, 어릿광대의 자부는 그 어릿광대를 사용하는 세력에 의해 전적으로 관리됨을 알 수 있었다. 

• 그 정체불명의 활동사진들은 현실 속의 ㄱ 체적 변혁 의지를 포기한 일군의 유럽 살롱좌파들이 자신들의 열패감을 마스터베이션하기 위해 마련한 자폐적 이론 집착증(포스트 맑스주의니 문화과학이니 하는)의 영화적 변종이다.

• 한국영화의 비극은 바로 켄 로치가 없다는 데 있다. 유례없는 천민자본주의의 수렁에 빠진 한국에, 수많은 80년대의 좌파청년들이 영화에 투신했다는 한국에, 자본주의와 긴장을 이루는 단 한 명의 감독이 없다는 것, 그것이 한국영화의 슬픈 비극이다.


김규항

야간비행,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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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