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키운팔할2006. 10. 14. 04:00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성냥갑처럼 조그맣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허전한 맘으로 돈을 세도
    
네겐 아무 의미 없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너는 알고 있지 구름의 숲      
우린 보지 않는 노을의 냄새   
바다 건너 편의 꽃의 이름    
옛 방랑자의 노래까지   
네겐 모두 의미 있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어느 날 네가 날개를 다쳐  
거리 가운데 동그랗게 서서   
  
사람들이라도 믿고 싶어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겐 아무 힘이 없어요   
날아오를 하늘이 멀어요"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가장 아름다운 하늘 속  
멋진 바람을 타는 
너는 눈부시게 높았고
       
그것만이 너 다워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가야한다면     
어딘가 묻히고 싶다면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가서    
마음을 놓고        
나무 아래서 쉬는 거야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섬으로 가서     
 

...     
      우리가 없는


가야 한다면

   

작사,곡 이상은




 
 

그 극장에 아직은 '라이브 2관'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을 때, 이상은과 백현진이 함께 하는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담다디'가 세상을 뒤집었을 때, 나 역시 그녀를 향해 열광을 보내는 수많은 소녀들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탬버린을 흔들어대며 허스키 보이스로 열창하는, 그러나 스폿라이트 속의 그녀가 조금은 안쓰럽고 어색하다 싶기도 했었다. 한 동안은 '상은언니에게' 라고 시작하는 일기를 열심히 썼었다. 그녀가 살던 집과 멀지 않았던 우리 학교 아이들은 무시로 그녀의 목격담을 전해왔다. 나는 그냥 열심히 전해지지도 않을 일기를 써댔을 뿐이다.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던 강인원의 노래를 열심히 부르던 그녀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미술을 하러 간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그녀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의 열광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약간은, 나의 열광이 부끄러웠던 것도 같고 너무 빨리 식어버리는 마음이 당혹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여전히 '포토뮤직'이니 '뮤직라이프'니 하는 잡지들을 탐독했지만, 소위 '동아기획표' 가수들에 관한 알량한 분량의 기사를 읽고 모으기 위해서였다. 물론 중간에 잠깐씩은 신해철에, 서태지 그리고 91년부터는 무엇보다 아저씨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스무 살 남짓까지 달마다 흘깃대던 대중음악 잡지들은 언젠가부터 '키노'와 '씨네21' 류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상은이라는 이름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따금 일본에서 어쩌고 하는 소식과 함께 새 음반 소식이 들려왔지만, 무렵 내가 사랑하던 뮤지션들과 비교하며 너무 번드르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한 번 멎은 열광, 그것도 결단하듯이가 아니라 자연스레 사라져간 열광이 다시 불 붙는 일은 거의 없다. 2000년 무렵으로 기억되는 그 공연은 한편 소녀적 우상과의 재회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나는 백현진의 무대에 더 솔깃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나는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좀 거북스럽고 불편했다. '담다디' 시절을 떠올리는 게 민망할 만큼 그녀의 음악과 그녀의 위상은 달라졌지만, 이전의 열광이 무색할만큼 아무런 감회가 없었다. 또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퍼슨웹에 실린 그녀의 인터뷰를 읽으며 한때의 팬으로서가 아니라 동시대 청자로서 응원의 마음 같은 게 든 적은 있다. 병적일 만큼 많은 노래들에 감정이입을 하고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나로서는 꽤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가끔이나마 떠올리게 되는 건, 그녀가 이 노래를 만들어 불렀기 때문이다. 까마득히 잊고 살던, 인간으로서의 반성을 상기시켜준다.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