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20


노래나 영화도 그렇지만, 특히나 책은 읽을 때는 당시의 컨디션이 독후감을 많이 좌우한다. 눈으로 활자를 응시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읽기가 되지 않는 것은, 머리로의 이해가 부족하다기 보다 마음에의 와닿음에 장애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런 아포리즘류의 글들은 더욱 그렇다.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되새길 때에 더욱 그 의미가 곱씹어지는 글들은, 마음 속에 무언가 다른 세상이 들어올 여지가 없을 때 참 역부족이다.
 

미셀 투르니에는 참 많은 책을 내고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열광하는 작가다.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인 나의 책꽂이에도 이 책이 꽂혀있었던 걸 보니 더욱 그렇다. 아마 '뒷모습'이라는 여운 가득한 제목과 역자가 김화영 교수라는 것이 선택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장 그르니에와 겹쳐지는 이름의 뒷글자가 주는 느낌이 아직은 만난 적이 없는 그에 대한 이미지를 미리 만들어버린 것 같다.
 

에두아르 부바라는 작가가 찍은 쉰 여섯장의 뒷모습 사진과 투르니에의 글이 실려있는 이 책은 사진집과 (짧은) 산문집의 중간쯤이다. 사실 나는 양장본으로 만들어진 책, 이렇게 빤빤한(?) 종이에 인쇄된 책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다. 반쯤은 사진집의 형식을 취한 터라 재질의 선택에는 한계가 있었겠지만, 이렇게 그윽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담은 책은 좀더 자연스럽고 부드러워도 좋지 않았을까 라고 뜬금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책 속에 몰입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겠지.

한 장 한 장의 사진 마다에는,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문학적이고 낭만적인 상상력이 덧대어져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진을 응시했을 때의 내 첫 느낌은 함께 실린 작가의 글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반전되거나 어떤 깊이를 부여받고 확장된다. '뒷모습'이라고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쓸쓸함과 고독함 같은 일반적인 감상에서 작가는 정확히 사진의 장수와 일치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마음에 여유가 조금 더 있었다면 나 역시 함께 상상하고 사색하며 그 뒷모습에 가려진 다양한 표정의 사연들을 좇아갔을텐데.


2005-08-02 16:52, 알라딘



뒷모습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프랑스에세이
지은이 미셸 투르니에 (현대문학,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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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