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영화에 빠져, 한동안은 노래 만큼이나 영화에 마음의 호흡을 의지하며 지냈었다. 아이다호, 길버트그레이프, 네이키드, 베티블루, 리얼리티바이츠, 베니와준, 록키호러픽쳐쇼, 쥴앤짐, 허공에의질주, 스모크, 그랑블루, 싸베지나이트, 집시의시간, 몬트리올예수, 시드와낸시, 섹스거짓말그리고비디오테이프, 동정없는세상, 백비트, 판도라의상자, ....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들이 내게 확! 다가와 꽂혀버렸고, 나는 정말 행복했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노란머리 파란눈의 그들에게도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리버피닉스와 쟈니뎁, 다니엘데이루이스, 쟝위그앙글라드, 쟝마크바, 제임스스페이더 그리고 여기, 에단호크. 그러니까,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순전히 그들 중의 하나인 에단호크 때문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 리버 피닉스보다 더 심약해보였던 어린 소년, 별 것 아니었던 컴퓨터우주탐험에서부터 죽은시인의사회, 늑대개, 미스테리데이트, 나의청춘워터랜드, 얼라이브 그리고 리얼리티바이츠에 이르기까지 조금은 일관성 없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의 성장을 지켜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는 23살에서 생을 멈춰버린 리버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내가 한없이 열광했던 고독하고 애틋한 길 위의 페르소나를 대신해 주목했던 몇몇의 배우 중 하나이기도 했다.
23살 동갑내기였던 동 트기 전의 그 수줍은 제시가 나른하고 사색적인 작가로 변신해 돌아왔던 비포선셋까지,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비포선라이즈의 제시가 되고,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는, '웬즈데이'를 들고 파리의 작은 책방에서 다시 셀린느를 만났던가. 에단호크의 소설? 스크린 속의 '작가' 이미지와 묘하게 겹쳐져 읽기 전부터 어떤 아우라가 이미 형성되어버렸다. 좌충우돌하는 불안한 주인공 지미의 모습은 'I'm nothin''을 절규하던 리얼리티바이츠의 트로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로.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내게 에단호크는 아직은 영화배우로 유효하다.
솔직히 소설 자체가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언젠가부터 영화도 소설도, 나와 관련된 현실과 유리된 듯이 너무나 멀어져버린 탓인지. 글쎄... 분명 활자로 읽고 있으나 책장을 넘기며 내내 주인공 지미가 아닌 에단호크의 모습이 상상되고 있었다. '미국적'인 게 무어냐고 물으면 마땅히 할 말은 없지만, 뭐랄까. 너무나 미국적인 한 편의 이야기라는 느낌이랄까. 그다지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았던 것은, 어쩌면 읽으면서 내내 너무나 선명하게 머리 속에 '에단호크'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줄거리가 부각되기보다는 마치 자동기술처럼 주인공의 내면을 따라가는데 더 집중된 내용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배우인 에단호크에 대한 어떤 믿음(?)을 더해주기에는 충분하다.
2005-08-01 02:35,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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