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2021. 2. 17. 23:51


어제부로 엄마의 눈물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새로운 차원의 일상이 시작된 셈. 마침 좀 더 깔끔한 옷장 및 침구류 정리를 위해 주문한 리빙박스가 도착했고, 닷새쯤 비웠던 집 정리를 하며 어제가 지나갔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두 편의 영화를 보고, 토요일에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하는 임동민&임동혁 쇼팽 피아노 콘서트를 보고, 다음 주 금요일부터 2박 3일간은 대구의 사촌이 와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하여 2월에도 부산영화여행을 하는 건 사치다 싶어 건너뛰기로 했는데, 주연배우의 강렬한 비주얼에 혹해 [마리오네트]를 꼭 보고 싶었다. 통영에선 하지 않아 아쉽던 차 cgv 스피드쿠폰 무료예매에 성공했고, 거제까지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건 좀 그러니까 [인투 더 미러]도 함께 보고온 게 오늘.

며칠 집 떠났다가 돌아오니 피곤했고 속상해하는 엄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고 밤에 잠이 안 왔다. 새벽 늦게 잠들었다가 도시가스 점검하러 오신 분의 벨소리에 겨우 일어나, 영화를 취소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커피 한 잔 마시고 세수하고 나갔다오기로 마음을 굳혔다. 2월 초의 cgv거제행이, 버스 대기 시간 감안해도 2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 덕분. 거제대교 건너 환승정류장에서 34분을 기다리는 건 좀 지루했지만 바닷가를 지날 때는 마음이 트이고 좋았다.

 

영화 시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버스정류장에 면한 공원에 잠시 들렀다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우뚝한 성벽이 거제 포로수용소의 흔적이라는 걸 알았다. 문득 김수영 시인이 떠오르고, 설마 흔적이 이것뿐일까 싶어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라는 데가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사놓기만 한 [세상의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를 챙겨 읽고 따뜻한 날 거제에 오게 되면 한 번 가봐야지 싶어졌다. 잊지 말아야지.

영화 보고 돌아와 통화한 엄마는 거의 평정심을 되찾은 것 같았다. 이런 방식으로 이기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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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