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나갔다 왔다. 1월에 매일 나가기에 성공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갈 수 있구나 싶어 강박을 내려놨더니 자연스레 집순이가 됐다. 산책 겸 용건이 있는 외출이었는데 목적 중 하나는 성공하고 하나는 실패했다. 설에 집에 갈 거라 미용실에 들르고, 아빠의 명이었던 족보(?ㅠ) 수정본 10장을 출력해야 해서 동호동에 있다는 브랜드문구점에 들를 계획이었다.
해저터널 지나 서피랑 쪽으로 걸었는데 새삼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혼자 통영에 여행 왔던 몇 년 전에는 서호시장부터 중앙시장까지 이어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걷기만 해도 들뜨고 좋았다. 바닥을 보면 보도블럭 사이에 이중섭의 작품이나 윤이상의 교가 같은 것들이 있었고 버스정류장이며 가게 창 등 곳곳에 통영 관련 작가들의 글귀나 사진이 있어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했었다. 그렇게 걷다가 '윤이상과 함께 학교가는 길'로 이어지는 어느 골목 코너의 간판을 '가고파의 상실'로 읽고, 통영은 가게 이름도 시적이군 생각했다가 '가고파 의상실'인 걸 알고 혼자 머쓱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간판에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기는 하다.
서피랑을 지날 때가 5시쯤이었는데 오전에 아침겸점심을 먹어서 배가 고팠다. 혹시나 해서 서피랑떡볶기집에 들렀는데 장사가 끝났다고 하셨지만 어묵볶이에 튀김이라도 먹겠냐셔서 감사히, 맛있게 먹었다. 처음 먹었을 때는 뭘 그렇게까지? 했는데, 가끔 생각나고 그 근처를 지날 때면 강렬히 당기는 맛이다. 손님이 나뿐이어서 시크하게 말 거시는 할머니랑 잠시지만 이야기도 나눴다. 먹는 동안 세 번이나 손님이 왔고 한 분은 남은 튀김과 떡볶이 국물, 어묵을 포장해가셨는데 뭔가 내가 럭키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예정에 없이 떡볶이를 먹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혹시 문을 일찍 닫을까 싶어 브랜드문구점에 확인 전화를 드렸는데, 출력 자체가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2018년 가을, 아빠는 A4용지에 빽빽하게 그린 한 장의 가계도 같은 것을 내밀며 컴퓨터로 정리가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자식이라고 효도하는 것도 없고 사근사근한 딸도 아니기 때문에, 그거라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받아 왔다. 기본만 할 줄 아는 포토샵 작업은 난감해서 한글파일로 만들어 그해 추석에 출력해 가져갔다. 그러면 끝날 줄 알았지만, 이후 명절을 앞두고 매번 소소한 수정사항이 생겼다. 수정을 거듭하면서 출력한 매수가 누적 100장은 훨씬 넘었는데, 친가 시골에 안 간 지 수십 년이 됐기 때문에 시제니 뭐니 해서 모인 친척들 중 이걸 받고 반가워할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설에 드리면 되는 거라 다른 방법으로 일단 해결은 했는데, 명절 앞두고 이걸 수정할 때마다 느끼는 거리감과 반발심과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아빠가 평소에 뭘 요구하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이런 거라도 해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단절감을 거두기 어렵다. 그런 시대에 태어나 그렇게 살아왔기에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의 뿌리'(?)에 애착하는 거라고, 아빠의 몰입을 시대착오적으로만 보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의 애쓰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간헐적 효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