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11. 6. 19. 05:31






사랑을 놓치다는 내심 많이 기대를 하고 있었던 영화다. 지금의 설경구나 송윤아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지나가는 버스에 붙은 티저포스터를 보고는 마음이 울렁해서 개봉을 기다렸다. 다른 영화를 보러갔다가 예고편을 두 번이나 보면서 사실 조금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목이 반은 먹어주는 영화니까 라고 생각했다. 마파도를 만든 감독의 작품이라는데 기본적으로 그와는 다른 컨셉인 것 같고, 사실 아무리 잘 봐줘도 초반에 대학생으로 분한 설경구는 부담스러웠다. '8월의 크리스마스' 쯤이나 기대했다면 너무 과했던 거겠지만, 그래도 뭔가 아스라하고 애잔한 잔상이 많이 남는 영화이기를 바랐는데... 별로 그렇지는 않았다.
 

오랜 동안 주변을 맴돌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움 같은 것에 대한 이상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편인데... 설경구가 분한 우재라는 역할은 뭐랄까.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라고는 해도, 그래도 영환데 너무나 사실적인 캐릭터여서 오히려 비호감이었던 것 같다. 예고편에도 복선인 양 등장하는 연수의 독백 '미안...하다'를 끌어내는 그의 행태와 그렇게 맴돌았음에도 주저하다가 그래, 결심했어! 하듯 사과 따러 간다며 달려가는 모습이 나는 미웠다. 차라리 나오는 줄도 몰랐던 상식역의 이기우 캐릭터가 꽤 맘에 들었고, 그가 남긴 명대사 잘 해주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겁니다가 마음에 와서 콕 박혔다. 꽤 힘 줘서 준비한 듯한 은행나무와 큰 사과 따기 에피소드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랑 영화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기획 메타포들이 등장한 탓에 새로움이나 앗쌀한 느낌은 부족했던 것 같다.
 

오히려 내용과 별개로 조연으로 등장한 연극배우 전배수가 무척 반가웠고, 우재가 동물병원 앞에서 연수를 찾으며 고성방가를 자행할 때 통장으로 등장한 연극배우 남문철을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대학로에서 일할 때, 무려 부산에서 올라와 단역을 전전하며 연극에의 열정과 의지를 불태우던 그래도 아는 오빠였는데... 광대는 팔자려니, 여전히 그 판을 기웃거리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과 그래도 의리는 있어 혹 설경구가 불렀나 하는 생각 등등. 그외에도 스크린에 잠시 잠깐씩 출몰하는 연극배우들을 보며 그런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엔딩에서 오래 흘렀던 반가운 목소리 tom waits! 나는 그의 목소리를 정말 좋아한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가 한 둘이 아니기는 하지만 십 년 남짓 전에 'smoke'에서 처음 만난 그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내게 큰 위로였다. 흐느낌 같기도 하고 울부짖음 같기도 한, 때로는 분간 안되는 읊조림 같기도 한 그의 낮은 목소리는 정말 매력적이다. ost를 검색해봤는데 실려있지가 않아 갖고 있는 tom waits의 음반들을 뒤지다보니 나온다, time. 감독이 각본을 쓸 때부터 삽입곡으로 염두에 뒀다는 걸 알고서 이 영화가 조금 더 좋아졌다. 



2006-01-31 02:29,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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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